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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17. 2021

명종과 문정왕후, 윤원형, 못살겠다 일어난 임꺽정

제13대 왕 명종.


초등학교 4학년쯤 되는 나이,  인종의 뒤를 이어 이복동생인 명종은 왕위에 오른다. 


중종의 첫째 아내는 폐출되었고, 둘째 아내는 인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죽었다. 셋째 아내가 문정왕후인데 딸만 내리 셋을 낳았고 30대 후반에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명종이다.


11살의 왕이 어떻게 국정 운영을 하겠는가. 수렴청정은 어린 왕을 대신해 왕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대신 국사를 보는 걸 뜻한다.


드라마에서 가끔 보던 사극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한 여인이 발을 내리고 아랫사람에게 뭔가 은밀한 지시를 내리는 상황 말이다.


예부터 왕실에서는 여인이 궁의 대신을 만날 때 발을 내리고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대화를 하는 게 예법이었다.


수렴청정이라는 한자어를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다.  (드리울 : 수), 簾 (발 : 렴), 聽 (들을 : 청), 政 (정사 :정) 말 그대로 해석해보면  '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듣다. '라는 뜻이 된다.

어머니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 대신 수렴청정을 했다. 그 권력이 막강했다고 전해진다. 남성 신하들을 확 휘어잡았다.


명종실록 20년 4월 06일에 기록된 내용이 흥미롭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 씨(尹氏)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사신은 논한다. 윤비(尹妃)는 천성이 엄의(嚴毅)하여 비록 상을 대하는 때라도 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지 않았고 수렴청정(垂簾聽政)한 이래로 무릇 설시(設施)하는 것도 모두 상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불교에 마음이 고혹(蠱惑)되고 환관을 신임하여 나라의 창고를 다 기울여 승도(僧徒)들을 봉양하고 남의 전지와 노복을 빼앗아 내수(內需)를 부유하게 하며 상벌(賞罰)이 참람하여 사람들이 권계(權戒)되지 않았다.


게다가 권세가 외척으로 돌아가 정사가 사문(私門)에서 나오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며 기강이 문란하고 국세(國勢)가 무너져서 장차 구원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명종 대왕이 전의 잘못을 깨달음에 힘입어 장차 크게 바로잡으려는 뜻이 있었는데, 정령(政令)을 베푼 지 오래지 않아서 문득 승하하니, 아, 슬픈 일이다.


' 암탁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다함이다. '라는 말은 문정왕후를 비유한 거다. 그만큼 후대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왕이 마음대로 정사를 펼치지 못하고 외척이 득세하여 나라가 혼란했다. 문정왕후가 죽자 명종은 잘못된 걸 바로 잡으려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단명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가 외척으로 돌아갔다는 말은 문정왕후의 동생, 즉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을 말한다. 누나를 등에 업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권력을 남용했다.


명종시대에 조선의 4대 사화중 하나인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간단히 말하면 외척 세력 간의 집안 다툼이다. 대윤 윤임과 소윤 윤원형 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중종 사후 그다음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를 두고 윤임은 인종 편에 윤원형은 조카인 명종 편에 섰다.

윤임은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의 오빠이고 윤원형은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인종이 즉위하고 윤임의 대윤 세력은 의기양양했으나 8개월 만에 죽자 1545년 명종이 왕이 되니 윤원형의 소윤들은 정적인 대윤파를 숙청한다. 이를 두고 을사사화라 한다.


여기서 잠깐, 윤원형을 기록한 명종실록 20년 11월 18일을 보자.


사신은 논한다. 전대의 권간으로 그 죄악이 하늘까지 닿기로는 윤원형 같은 자가 드물 것이다.  (중략)   정사를 잡은 지 20년, 그의 권세는 임금을 기울게 하였고 중외가 몰려가니 뇌물이 문에 가득해 국고보다 더 많았다.


윤원로의 권세가 자기와 비슷해짐을 저어해, 윤 춘년(尹春年)을 사주해서 그 죄목을 열거해 글을 올리게 해서 죽게 하였고, 천첩을 몹시 사랑해 정처를 버리더니 필경에는 그를 독살하는 변을 빚었으며 이어 첩으로 부인을 삼았다.


실록의 기록에도 있듯이 누나인 문정왕후의 권력을 배경으로 윤원형은 권력, 재력을 모두 누렸다.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왕의 권력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윤원형은 급격한 몰락을 하게 된다. 누나인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신하들은 그를 탄핵했고 명종은 즉시 허락한다.


온갖 악행으로 워낙 지은 죄가 많아서 사사될 위기에 몰리자 윤원형과 그의 처는 음독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친다.



'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 고 하지 않았는가. 고위 관료들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심각했으니 그 아래 관직들은 백성을 얼마나 착취했을까. 견디다 못해 들고일어난 이가 바로 임꺽정이다.  


명종실록에 임꺽정을 검색해보니 총 18번 이름이 거론된다. 다음은 명종 14년 3월 27일의 소제목이다.


' 개성부 도사를 무신으로 뽑아 보내 도적을 잡을 방도를 논의하다. '


임꺽정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그 방법을 논의했나 보다. 이날의 기록에 사관의 논평이 있다.


사신은 논한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오가 풍습을 이루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권요(權要)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임꺽정이 반기를 든 이유를 사관은 설명해준다.



1565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달리하자 명종은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르게 잡고자 했으나 34살의 나이로 단명을 하게 된다.


중종의 여섯 번째 아내의 둘째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데 그가 선조다.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이 즈음 조선 사회는 외척 세력에 의한 사회적 혼란으로 힘없는 백성들의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도록 힘들었다.


국력 또한 약해질 수밖에.. 조선은 점점 곪아가고 왜란과 호란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다.


명종의 능인 강릉과 그의 어머니의 능은 태릉 선수촌 인근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태릉이 문정왕후의 능이다. 아들인 임금의 묘보다 웅장하다. 상대적으로 강릉은 초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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