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승지(承旨)를 시켜 제독에게 고하게 하기를,"국왕(國王)께서 배례(拜禮)한 뒤에 삼고두(三叩頭)하고자 합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이것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하였다.
상이 제독 앞으로 나아가서 재배(再拜)하고 삼 고두(三叩頭) 하니, 제독이 답배(答拜)하였다.
상이 다시 양원 앞으로 나아가서 재배하니, 양원이 답배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황은이 망극하고 대인의 덕도 망극하오이다."
*해설*
제독 : 명나라에서 지원군을 이끌고
온 사령관 이여송.
양원 : 명나라의 장수. 부사령관.
상이 제독에게 재배 (再拜) 하자 제독도 답배하였다. (선조가 이여송에게 두 번 절을 하자 이여송도 두 번 절을 하였다.)
위기에 처한 조선이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한나라의 왕이 일개 장군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비굴한 모습을 보여줬다.
삼고두(三叩頭 )란 용어가 낯설어 찾아보니 머리가 닿도록 세 차례에 걸쳐 절을 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양원이라는 부 사령관에게 까지 절을 하는 선조의 모습이 있다.
조선을 이끄는 왕이 이런 모습이었으니 그 누가 선조를 따르겠는가. 심지어 전쟁의 판세를 잘 읽지도 못해 이순신마저 파직시키니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조는 (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는 56세를 살았고 41년간을 왕위에 있었다. 그는 사림파를 정계에 주축으로 등용시켰다. 그들은 동인, 서인으로 또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었다. 결과적으론 망국의 근원인 당쟁의 불씨를 선조가 만들의 준 셈이다.
한양을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을 시도했던 어리석은 왕, 고통받는 백성을 져버리고
열등감과 시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을 지닌 채 오로지 자기 살 궁리만 모색했던 못난 군주.
그는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경기 구리시 인창동 66-9에 있다.
조선왕조를 열었던 태조 이성계의 왕릉과 근접한 곳이다. 조상님께 죄를 빌며 용서를 구하라고 그곳에 선조의 왕릉을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