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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06. 2021

스트레스에 시달린 중종과  대장금, 재상 반석평.

제 11대 왕 중종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의 삶을 알아보자.

그는 57세 (1488 ~ 1544)를 살았고 38년 (1506년 ~ 1544년)을 왕으로 살았다.


여러분은 학교 다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중종반정 (中宗反正)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거다. 말 그대로다. 반정, '  바름 (反正)으로 돌아오다. '라는 의미다.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든 신하들이 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연산군 재위 12년은 그야말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두 번의 사화로 수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었다. 국가 재정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온갖 폭정을 견디다 못해 훈구파를 중심으로 중종반정이 이뤄졌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떠밀려서 하게 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그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영향을 준다.


중종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치통, 종기, 변비로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  스트레스 (stress) -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ㆍ신체적 긴장 상태.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따위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 신경증, 우울증 따위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국어사전>


필자 역시 외적, 내적 요인의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으로 한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중종은 신하들에 의해 떠밀려 왕이 됐다. 태생적으로 왕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는 훈구파를 견제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사림을 다시 등용한다. 하지만 중종의 생각과는 달리 조광조를 주축으로 한 급진 사림파는 훈구세력의 반발을 일으킨다.


마침내 주초위왕이라는 훈구파의 모함 아래 조광조의 몰락으로 사림의 힘이 약해지는데 이를 기묘사화 (己士禍)라 한다. 조광조는 지나친 이상주의와 조급함으로 훈구파를 자극했다.


* 주초위왕 (走肖爲王) :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된다. 조 씨(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꿀로 나뭇잎에 주초위왕이라는 글을 쓰고 벌레가 파먹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이 사실로 중종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결론적으로 신진사류의 사림을 등용시켜 훈구파를 견제하려는 중종의 생각은 빗나갔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힘이 없는  왕이었다.


오랜 세월 신하들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중종의 심정이 어땠는지 짐작해본다. 아마도 늘 마음에 돌덩어리를 매달고 사는 듯했을 거다. 당연히 건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종의 곁에서 큰 도움을 준 어의녀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대장금이다.


대장금이 중종의 종기에는 거머리를 이용했고 변비는 꿀을 활용해 치료를 했다 한다. 구체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고 일설에 의한다.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니 대장금의 공로를 인정해 포상을 내린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남성 위주의 조선 사회의 분위기에서 여성으로 왕의 어의가 됐다는 건 그녀의 의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증명해준다.


MBC에서 2003.09.15. ~ 2004.03.23.

54부작으로 제작된 대장금은 배우 이영애가 주연을 했다. 18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재미와 감동이 있는 드라마다.


대장금이 여자로서 중종시대 어의녀로 후대에 거론되지만 또 한분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


중종실록에 반석평이라는 인물을 검색해본다.

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2월 3일 정유 4번째 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의 기록이다.


<서얼이 당상에 오른 전례를 이조로 하여금 아뢰게 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옛날에는 혹 도구(屠狗)와 관고(管庫)의 무리에서 사람을 천거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예전의 사람 쓰는 법은 세류(世類)이고 아닌 것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문벌에 구애되어 어찌 등용의 길이 넓지 않음을 보이는가!


석평은 천얼(賤孼) 출신으로 시골에 살았는데, 그가 학문에 뜻이 있음을 그의 조모가 알고서, 천얼임을 엄폐하고 가문을 일으키고자, 그 손자를 이끌고 서울로 와서 셋집에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의식을 이어가며 취학시켰다.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여 중외(中外)의 관직을 거쳐 지위가 육경에 오르니, 사람들이 모두 그 조모를 현명하게 여겼다.


중종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꽤 많이 거론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 남자의 진실 노비 출신 반석평이 방영되기도 했다. 노비 출신 성분을 감추고 과거급제를 한 후 형조판서 자리에 오른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종에게 자기 죄를 고백했지만 왕은 그를 용서해 주었다.



반기문 전 UN총장의 선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반석평의 직계 후손들은 반 씨 문중에서 별도로 있다고 한다.


다음 링크는 한때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을 무렵의 기사 내용이다.



중종시대는 위로 여진족, 아래는 왜란으로 혼란을 겪고 기묘사화로 권력을 잡은 훈구파로 인해 정국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힘이 없는 왕은 이리저리 휘둘렸고 조선의 국운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중종의 능은 서울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있고 인근에 제 9대 임금 성종의 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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