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 2.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 3. 누군가를 기다릴 때, 출.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잠깐, 부담 없이 읽을 글이 필요하신 분.
<이글에 나오는 내용 요약 >
*칙령 ( 勅令)은 임금이 내리는 명령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이후 법적인 효력이 있었다고 한다.
*왜, 일개 섬이었던 울릉도를 군으로 높여주고 군수(郡守)로 하여금 근처 섬들까지 관리하라고 명을 했을까..
*고종을 일본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가로 러시아는 우리에게 이권을 요구하고 1896년 5월 14일 ‘베베르-고무라 각서’를 체결하기까지 한다.
*러시아에게 우리 삼림 채벌권까지 내어 주다니. 그리고 칙령까지 내려 명목은 우리 울릉도 주민을 보호하고 행정력 강화였지만, 러시아가 외교 문서로 강력 항의한 걸 바로잡아 준거 아닌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
조선 말기 ~ 대한제국 사이, 우리 땅을 두고 주변 여러 나라와 서구 열강들의 다툼이 있었다. 무슨무슨 조약들에 우리 영토는 유린당했다.
고종이 내린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에는 과거 우리 역사의 아픔이 담겨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본다.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 (울릉)에 대한 문제다. 지문에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울도 군수가 이 섬까지 관리하도록 하라. "
초급 문제지만 너무 쉽다. 대한제국 칙령을 잘 몰라도 눈치로 때려 맞출 수 있다.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섬, 정답은 독도다.
칙령 (勅令)은 임금이 내리는 명령으로우리나라에서는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이후 법적인 효력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는 고종 37년 (1900) 10월 25일에 반포되었다. 한마디로 줄이면 섬이었던 울릉도를 군(郡)으로 격상시켜주고 인근에 있는 죽도와 독도를 관장하게 했다.
왜, 일개 섬이었던 울릉도를 높여주고 군수(郡守)로 하여금 근처 섬들까지 관리하라고 명을 했을까..거기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한국 근대사 / 개항기를 들여다보면 우선 깊은 한숨부터 나온다. 옆 나라일본도 진통이 있었지만 메이지유신(1868) 단행함으로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사회 전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임금은 허울뿐인 세도정치(1800 ~ 1863) 시기를 거쳐 고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그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한다.
근대 우리 역사의 흥망은 이 시기에 가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 시기 10년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걸 잃었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했으나 결국 서구 열강들에게 나라의 이권을 넘겨주게 되고 주권마저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왕후와의 갈등 또한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국내 정치는 점점 혼란해졌고 마침내 친일 내각이 구성됐는데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구 열강들은 제동을 걸었다. 이 와중에 명성왕후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친일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은 명성왕후를 시해했던 거다.
을미사변 (1895년, 일본의 명성왕후 시해 사건) 이후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아관파천 (1896년 )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한다. 친러 정권이 수립되고 러시아는 압록강과 울릉도의 산림 채벌권, 광산 채굴권, 전신선 연결권등 각종 이권을 챙긴다.
쉽게 말하면 고종을 일본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가로 러시아는 우리에게 이권을 요구하고 1896년 5월 14일 ‘베베르-고무라 각서’를 체결하기까지 한다.
이를 근거로 1899년 러시아는 일본이 울릉도를 불법 점거하고 삼림을 벌채해서 가져가는 건 각서 위반이라며 강력 항의한다. 이에 실제로 조선 정부가 현장에 나가서 점검을 해보니 러시아 주장이 맞았다.일본인들을 자기 마음대로 불법 점거를 하고 있었다.
조사 이후 대한제국은 안 되겠다 싶어 울릉도에 대한 행정권을 황제의 명으로 강화하려 했다. 이때 독도 역시 울도군(울릉도) 군수의 관할 지역으로 삼았다.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 (울릉)는 그렇게 반포된 거다.
<마무리 글>
러시아에게 우리 삼림 채벌권까지 내어 주다니. 그리고 칙령까지 내려 명목은 우리 울릉도 주민을 보호하고 행정력 강화였지만, 러시아가 외교 문서로 강력 항의한 걸 바로잡아 준거 아닌가..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19세기 말, 조선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 미국 등(서구 열강) , 일본 사이에 끼여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결국 주권을 잃게 된다. 권력 다툼으로 나라를 돌보지 않은 대가를 치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