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유도원도는 우리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있다. 예전에 우리 것이라 해도 불법으로 일본이 가져갔다는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반환 요청도 하지 못하고 있다.
* 김홍도의 씨름도에는 작가의 의도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방도라는 신비한 숫자의 규칙이 있다.
* 김득신도 김홍도 못지않은 화가다. 조선시대 풍속화에 해학과 정서를 한층 더 발전시킨 인물이다.
[ 24번 기출문제 ]
다음 특별전에 전시될 그림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조선 후기 회화 특별전>
" 그림 조선 후기를 담다. "
1. 씨름도. 2. 몽유도원도 3. 작호도 4. 노상 알현도.
[ 쉽고 재밌는 해설 ]
조선 후기 그림 작품이 아닌 걸 고르면 되겠다.
몽유 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조선 전기 작품이다.민화와 풍속화는 조선후기에 많이 그려졌다.
<몽유도원도 >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풍경을 화가 안견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그를 따르던 문사들이 많았다. 아버지 세종도 한시와 고전 작품들의 편찬을 안평에게 맡겼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그의 이런 능력은 형인 수양에게 견제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세조의 계유정난에 휘말려 강화도에 유배되고 사사됐다.
몽유도원도는 단순히 꿈만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안평대군이 직접 쓴 도원기(桃源記)’가 있고 제찬 시문’(題贊 詩文)도 함께 있어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도원기 : 그림을 그리게 된 정황을 쓴 글.
*제 찬시 문 : 21인의 문인들이 남긴 감상.
이처럼 소중한 우리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나라현의 덴리 대학 중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1955년쯤부터 덴리 대학에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불법으로 가져갔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몽유도원도를 우리나라로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전형필 씨가 몽유도원도를 구입할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사연은 이렇다. 1931년 일본의 미술관에서 전람회가 있었다. 몽유도원도가 출품됐는데 가격이 3만 원이었다. (3만 원이면 당시 서울에 있는 집 30채를 살 수 있을 만큼 큰돈) 전형필 선생은 소식을 듣고 일단 계약금부터 걸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잔금을 지불하지 못했다.
1906년생인 전형필 선생은 24살 때 어마어마한 재산을 부모님과 양부모님께 물려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자칫 외국으로 유실될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몽유도원도를 3만 원에 거래할 수 있었을 때 그의 나이가 유산 상속을 받을 24살 즈음이었으니 상속 문제로 인해 돈을 쓸 수 없는 입장에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놓친 몽유도원도는 일본에게 반환 요청도 하지 못하고 있다.
< 씨름도 >
단원 김홍도의 대표작인 씨름도는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씨름도에는 신기한 수의 배열이 숨어 있다. 바로 마방진이다. 옛사람들은 마방 진속에 신비한 힘이 숨어 있다고 믿었다.
마방진이란 1~9까지의 숫자로 배열을 하되 가로, 세로, 대각선 숫자들 합이 모두 같은걸 말한다.
어떤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15가 나온다. 신기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다음 씨름도에 등장하는 사람의 수를 살펴보고
그림에 있는 마방진을 보자.
위 그림을 보고 눈치채셨는가.. 씨름도는 X자형 마방도다. 대각선을 더하면 12가 나온다. 또한 가로 13, 세로 13, 세로 7, 가로 7이 나온다. 우연히 맞아떨어진 건지 김홍도가 일부러 마방도를 사용한 건지 알 수는 없다.
< 작호도 >
작호도를 다른 말로 까치 호랑이 그림, 호작도라고 한다. 이 그림에는 3가지 만물이 등장한다. 소나무, 까치, 호랑이다.
소나무는 정월, 까치는 기쁜 소식, 호랑이는 액운과 잡귀를 막아 준다는 의미로 우리 조상들은 새해가 되면 작호도를 대문이나 집안에 붙여 두었다고 한다.
작호도에서 호랑이는 까치에게 쩔쩔매며 바보스럽게 표현되기도 하고 눈빛이 부리부리하게 그려진다. 이는 탐관오리 (호랑이 ), 민초 (까치)를 의미하며 신분제도의 갈등을 풍자적으로 나타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노상 알현도 >
노상 알현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김득신이 그린 작품이다. 김홍도의 화풍을 이어 풍속화를 더욱 발전시킨 인물이다.
김득신의 그림은 산수를 추가시키고 민중의 정서적 삶을 해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노상 ( 路上 ) :
길의 바닥 표면. 길거리나 길의 위
알현 ( 謁見 ) :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자. 제목 그대로 길거리에서 뭔가 높으신 분께 하소연을 하는 장면인 듯 보인다. 원래 이 풍속화에는 제목이 따로 없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림의 내용을 보고 해석하면서 ' 반상도 ' 또는 노상 알현 도라고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풍속화 하면 대부분 김홍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보다 한층 더 백성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 낸 이가 김득신이다.
친구들 중에 그림 잘 그리는 친구 하나쯤 있다. 따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잘 그리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