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세규 May 04. 2022

스며드는 것 / 안도현

시 해설 / 임세규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 해설. /  임세규


안도현 시인은 이 시를 읽고 그렇게 좋아하던 간장 게장을 먹을 수 없었다는 독자를 가끔 만난다고 한다.


우리는 한 생명과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어린 알들의 죽음을 조용히 숨죽이며

지켜본다. 꽃게는 마지막 순간 모든 걸 내려놓는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천천히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알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불 끄고 잘 시간이란 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상만사 모든 걸 초월한 심정으로 제 새끼를 편히 보내려 하는 어미의 마음을 시인은 미리  넘겨짚었다.


죽음은 자연사, 사고사, 불치병 등등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표정을 본 적이 있다.


30여 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후 외할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한 걸음에 달려갔다. 난생처음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봤다. 그때 할아버지 눈가와 입가에 서린 죽음의 표정이 그랬다. 모든 걸 내려놓고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없는 시간을 초연히 받아들이신 것 같았다. 꽃게의 죽음 또한 그러했으리라.


'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


시의 이 구절에서 숙연( 肅然 ) 함마저 느껴지는 건 왜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 우리는 / 박은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