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시 해설 / 임세규
자기를 내어주며 세상사 열심히 달려왔건만 야속한 인생은 빈병이 되어 버렸네요.
빈 소주병은 아버지요, 그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 화자의 마음 아픔이 느껴지는군요.
아버지는 분명 식구들 들을까 봐 나지막이 우시다가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셨을 거예요.
당신을 의지하는 아내와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가슴에 간직하고 계셨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