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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y 28. 2022

하루살이의 초상 /박은주

시 해설 / 임세규

하루살이의 초상 /박은주


시장 상인들이 시위를 할 때

노점상들은 그곳에 끼어들 수 없다


일용직 노동자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편의점 알바생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달라는

시위 같은 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정말로 가난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가난이 있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두 개에 천 원 하는 애호박이나

세 묶음에 천 원 하는 깻잎을 담고 있는

빨간 소쿠리처럼


딱, 그 자리에 발목 잡힌 가난이 있다

아무것도 쌓을 수 없는 티끌 같은 가난이 있다


일본이 백색 국가 목록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후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일인 시위가 뜨거울 때도

그 목소리에 끼어들지 못하는


기가 죽은 허기가 있다

하루살이 같은 하루의 가난이 있다


시 해설 / 임세규


휴일 아침입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 거실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책장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시집 한권을 꺼내 책상에 앉습니다.


시인과 마주 앉아 그녀와 눈을 맞추며 한줄한줄 읽어갑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가난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가난이 있다]


가난하다 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난이란 뭘까.. 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추운 겨울 지하철 역사 입구 구석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의 사연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간이 천막에 종이박스를 침대 삼아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초등학교를 마치며 도시로 나왔습니다. 한때는 돈을 많이 번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행복을 오랫동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해 이제 겨우 살만 하다 싶었는데 믿었던 사람의 배신과 함께 수억 대의 빚을 지고 말죠. 빚 독촉으로 쫓기다시피 달아난 고향에는 90세의 할머니만 남겨두었습니다.


[딱, 그 자리에 발목 잡힌 가난이 있다

아무것도 쌓을 수 없는 티끌 같은 가난이 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티끌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죠. 다시 한번 일어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도움도 도와줄 

친인척조차 없으니까요. 


[기가 죽은 허기가 있다

하루살이 같은 하루의 가난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폐지를 모아 하루 한 끼를 사 먹고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녀야만 했습니다.


불현듯 저는 부끄러워져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친구는 결혼할 때 부모님이 몇억을 도와줘 집 장만하기가 수월했다고, 다른 집들은 재테크를 해서 월세도 받고 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느냐고, 겨우겨우 20평대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우리는 30평대에 언제 살아보느냐고, 남들은 좋은 차에 해외여행도 자주 가는데 나는 뭐냐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 모두가 다 평생 가난하게 산다는 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런 환경을 극복해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무서우리 만큼 냉정합니다. 출발이 한참이나 뒤처져 있는 만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간극은 분명 있습니다.

상대적 가난과 절대적 가난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쌓을 수 없는 티끌 같은 가난이 있을지언정 후~욱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날려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난이 있을지언정 그래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관심으로 그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다시 한번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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