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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11. 2022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시 해설 / 임세규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者)도 아닌 죽은 자(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시 해설 / 임세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통근 버스의 속도감에 덜컥 겁이 납니다. 오규원 시인의 시를 읽다가 ' 푸훗 ' 웃음을 짓고 있네요. 아침에 갈아입은 제 팬티가 생각나서요. 오줌을 살짝 지린 것 같기도 하고요.


왜 하필 죽기 전에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자기 팬티를 걱정해야 하는지..

유머 속에 담긴 화자의 철학을 음미해봅니다.


팬티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죠? 속옷, 흰색, 중요 부분을 가리는 마지막 보루, 부끄럼, 청결, 찔끔 등등 이런 단어들이 생각나네요.


저는 이 단어들 중 부끄럼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죽고 난 뒤의 팬티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만 여기서  팬티는 부끄러움, 즉 우리가 살다가 남긴 부족함의 흔적이 남은 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를테면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 타인에게 준 상처,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들의 감정들 말입니다.


내 안의 부끄럼을 가진 팬티가 깨끗하다면  잘 살았다는 거니까 언제 죽어도 걱정이 없겠죠.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늘 죽는 순간까지도 깨끗한 팬티를 입지 못했음을 걱정하는 미완의 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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