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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Nov 19. 2022

부부 / 함민복

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우리가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감정들을 떠올려봅니다. 무얼 해도 예쁘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모습들 뿐이죠. 하늘이 맑고 화창하면 좋고 흐리고 비가 오면 그 또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인생의 한 컷을 남기는 날들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눈 마주치는 두 남녀를 바라봅니다.


 ' 참 좋을 때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


늦은 저녁 그녀의 집 앞에서 헤어짐이 아쉬워 몇 번을 돌아보고 손짓하곤 했습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어 놓고도 집으로 돌아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랑했던 두 남녀는 마침내 결혼을 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랑은 커나갔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큰 아이는 성인이 둘째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부부라는 인연을 맺고 살아오는 과정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맞벌이와 육아, 반복되는 살림살이에 지쳐서 욱함과 잔소리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노련함은 부부에게 익숙한 사랑을 가져다 주었고 결국 두 연인은 성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 부부를 읽고 공감이 많이 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둘이서 앞뒤를 붙잡고 긴상을 들어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서로 높이를 조절하고 한 발 한 발 속도를 맞추며 걸어야 상 위의 음식들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부 또한 마찬가지로 인생의 속도를 조절해가며 서로에게 맞추고 함께 걸어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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