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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21. 2023

결혼, 21년 차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뚜뚜뚜.. 뇌파의 파동이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30°가 넘는 한낮의 열기가 후끈후끈 작업장으로 들어온다. 살얼음을 동동 띄운 생맥주 한 잔이 쓱 눈앞에 어른거린다.


' 오늘 저녁은 야외에서 치맥 어떨까? '


' OK ~ '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자마자 0.5초도 안돼서 바로 오는 답장이 귀신같다. 마치 내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 역시 카톡 화면을 열어 놓고 내게 치맥을 쓰려했는데 먼저 ' 톡 ' 이 오더란다.


텔레파시.. ㅋㅋㅋ


아내와 나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이다. 텔레파시의 사전적 정의는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이다. 보고 듣는 언어적 행동이나 표현 없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감지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거다.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가끔 내게도 일어난다니 신기하다. 굳이 아내와 나의 텔레파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촉이 좋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안다. 부부가 오랜 시간 같이 살면 당연한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동상이몽( 同牀異夢)은 함께 잠을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과 속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말한다. 부부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도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심각한 위기를 맞는 부부들도 있다.


연애를 할 때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애절하더니 결혼 후에 점점 변하는 남편에 아내는 실망을 하게 된다. ' 그때는 콩깍지가 씌어서 안보였지.. ' 내가 왜 이런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 후회를 한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좋았을 텐데.. 그러나 서로의 성향을 조금만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올해로 우리 부부는 결혼 21년 차 맞벌이다. 아내와 나는 농장에서 잘 익어가는 과일처럼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성숙해지는 듯하다. 싸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싸운 기억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아내도 가끔 그런 말을 먼저 한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조금은 멋쩍지만 스스로를 진단해 본다.


첫 번째, 한결같다. ' 당신은 늘 한결같아. 변함없이 똑같아 '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못 챙기는 것도 늘 변함없지.. 농담으로 아내가 하는 말이다.


두 번째, 애틋하다. 살갑지만 아내에 대한 애틋함도 여전히 남아있다. (혹시 많은 남편들에게 지탄을 받을지언정) 사실 나는 행복한 부부관계에 대해 생각을 지금도 많이 한다.


세 번째, 요리에 관심이 많고 집안일은 아내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다.

(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설거지, 빨래, 청소등을 분담한다.


사실 이 세 가지 중 마지막 한 가지만 잘해도 아마 대부분의 부부문제는 해결될 듯싶다.

사정상 매일 할 수 없다면 주말에 하루쯤은  오로지 집안일을 남편이 하면 된다. 이를테면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휴식을 주는 셈이다.




혹시 자신과 아내의 성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심리학에서 크게 나눈 두 가지 이론이 있다. 감정과 인지적 이론이다.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부부의 대화를 예로 들면 이해가 쉽다.


지금은 겨울이고 창밖에 눈이 내린다 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나눈 부부의 대화다.


아내 : 밖에 눈 온다. 눈도 맞고 창 넓은 찻집에서 커피 마시고 싶다. 지금 나가자~


남편 : 아니 아니, 생각해 보자. 일단 밖은 추워~ 굳이 바닥도 미끄러운데 꼭 나가야겠어. 그리고 커피값도 너무 비싸. 그 돈이면 집에서 편하게 배달음식 시켜 먹을 수 있어


아내의 마음은 감정이 우선이다. 눈 오는 날의 낭만을 즐기고 싶은 거다. 하지만 남편은 어떠한가. 맞는 말이긴 하다. 이성적이며 효율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부부의 성향이 다르다면 사소한 것으로도 다툼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 부부는 어떻게 대화를 할까..

나의 경우는 감정적인 부분을, 아내는 효율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나 : 우와 ~ 눈 온다. 밖에 나가서 눈 맞으며 걷다가 커피 한잔 할까?


아내 : 추운데 뭐 하러 고생할까.. 커피값도 비싸고 집에서 눈 내리는 거 보면 되지요. 차라리 맛있는 거 시켜 먹자~


나 : (눈 내리는 창가에서 아내를 뒤에서 꼭 안아준다.) 자기양~ 추억은 돈으로 못 사는겨 ~ 우리 마음에 영원히 남는 거지..

(아내가 솔깃한다)  우리는 눈 오는 밤의 멋진 시간들을 함께 걸으며 좋은 추억 하나를 남긴다. 이런 대화와 상황은 평소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결혼에 대한 생각의 오류가 있다.


"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결심했어요. "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글쎄.. 나는 한참 생각한다. 내가 모자란 부분을 다른 사람, 특히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가 채워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에서 가능할까.. 이를테면 내가 내향적이니 외향적이었으면, 경제적인 여유를 채워줬으면.. 등등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서로가 바라보는 부족함이 어디 한두 가지 이던가.

막상 같이 살아보면 배우자에 대한 실망스러운 면이 쌓여가기 때문에 기대감은 무너진다. 내가 모자란 부분은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채워야 한다.


부부관계에서 제일 우선시해야 할 건 앞서 말했듯 신뢰와 믿음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존중이 필요하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면 그 사랑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바탕에는 존중만큼 중요한 건 없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보인다. 하루의 피로가 시원한 맥주 한잔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오랜 시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우리..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서로 의지 할 수 있는 친구다. 


결혼 21년 차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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