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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23. 2024

무게 400g 꽁치의 짭조름한 눈물

통조림 / 마경덕


밀봉된 바다, 무게 400g 꽁치의 짭조름한 눈물이 캔에 담겨있다 천사백 원을 지불하면 원터치로 열리는 진공의 바다 같은 용량의 인스턴트 바다들이 마트 진열대에 쌓여있다


제발 저를 당겨주세요 고리는 밑바닥에 바짝 들러붙었다 누가 안전핀을 뽑듯 저 고리를 당겨준다면...


 뚜껑이 열리기까지는 얼마를 기다려야 하나 유통기한을 며칠 남긴 꽁치의 눈빛이 흐리다 바코드가 찍힌 저 바다는 누군가의 식탁으로 초대되어 참았던 숨을 왈칵, 토하는 순간 손가락을 물어뜯을 것이다 열받은 것들은 뚜껑이 열리기 쉽다

즉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회용 바다를 사들고 간다 흔들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둥근 관, 머리가 사라진 토막 난 죽음이 떠 있다 캔 속엔 눈알도 꼬리도 빠진 물렁한 꽁치토막들, 썩지 않는 지루한 권태뿐이다


시인은 통소림 속에 갇힌 꽁치를 통해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네요. 밀폐된 공간, 짭조름한 눈물, 흐릿한 눈빛 등은 현대인이 느끼는 답답함, 고립감, 무력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천사백 원이라는 비싼 가격은 삶의 어려움과 소비 사회의 함정을 나타냅니다. (현재 꽁치 통조림의 가격은 3540원 이군요)

'제발 저를 당겨주세요'라는 절박한 외침은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절박한 호소로 느껴집니다. '누가 안전핀을 뽑듯 저 고리를 당겨준다면'이라는 표현은 삶의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과 동시에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석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일회용 바다'를 사들고 가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삶의 영양이나 보충이 없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사라진 토막 난 죽음'이라는 표현은 현대 사회의 황폐함과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을 상징합니다. '눈알도 꼬리도 빠진 물렁한 꽁치토막들'은 활력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썩지 않는 지루한 권태'는 현대인의 삶의 단조로움과 답답함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꽁치의 눈빛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흔들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둥근 관을 통해 현실과의 단절감을 드러냅니다. 또한, '열받은 것들은 뚜껑이 열리기 쉽다'는 표현으로 인간의 감정 폭발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캔 속 꽁치의 처지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유도합니다.

마경덕 시인의 '통조림'은 현대 사회에 소외된 개인의 고뇌와 허무감을 꽁치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인이 사용하는 독특한 비유와 은유 표현은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된 시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현대 사회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시 전체에 흐르는 절망과 허무주의적 분위기는 현대인의 불안과 무기력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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