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까. 점심을 간단히 때우려 간 편의점 진열대에서 작은 스티커로 '1등'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컵라면처럼 물만 부으면 미역국밥이 된다. 세상에나 이렇게도 미역국을 즐길 수 있다니... 그 맛 또한 전혀 손색이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세 손가락으로 꼽자면 첫째가 미역국이요, 둘째가 김치찌개요, 셋째가 된장찌개다. 이중 1등이 미역국이니 우리 집에서 제일 사랑받는 식재료는 단연코 미역이다.
퇴근길, 조금 일찍 도착한 집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 미역 한 주먹만 불려주세요. 저녁은 미역국으로 할게요.'' '' 응~ 알았어. ''
아뿔싸. 아내의 작은 손으로 한 주먹, 내 커다란 손으로 한주먹. 그릇이 넘치다 못해 '철철' 배부른 아우성이다. 말린 미역이 물을 먹으면 그렇게 불어날 줄이야~
''이~그''
아내의 눈치를 보며 미역이 가득한 국에 밥을 말아 머리를 긁적인다.
미역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여보게. 저것 좀 보게나. 고래가 미역을 먹고 있네. 새끼가 옆에 착 달라붙어 있군. 제 어미젖을 먹는 모양이 사람과 똑같네 그려.''
중국의 문헌을 보면 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치료를 하기 위해 미역을 먹는 걸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국을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날 미역의 영양소가 산모에게 좋은 음식임이 과학으로 입증됐다. 자연에서 발견한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미역을 물에 불린다. 두 번째 헹군 쌀뜨물에 멸치 육수를 준비한다.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소고기를 볶다가 다진 마늘을 넣고 불린 미역과 함께 볶는다. 육수를 붓고 끓인다. 간은 소금이나 국간장으로 맞춘다. 오래 끓일수록 맛이 있으니 20분 정도 더 끓이면 완성이다.
흐뭇하다. 요리라는 게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다. 내친김에 소고기 뭇국도 끓여본다. 은근히 어렵다는 뭇국이다. 역시나 간을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맛이다. 큰일이다. 저녁에 소고기 뭇국 끓여 놓는다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뽐냈는데 말이다. 아차! 그게 있었지. MSG의 도움을 약간 받으니 아까 하곤 맛이 천지차이다. '후루룩' 한입 맛본다. 됐다. 맛있다. 쉿! 마법의 가루 다시다 넣은 건 비밀이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식구들 생일에 미역국 끓여서 김장김치 한 조각 '스~윽' 찢어 밥숟가락에 올려주고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모습만 바라봐도 행복한 걸. 아내가 '맛있다' 한다. 합격이다. 중년 부부에게 사랑은 뜨끈한 미역국 한 그릇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