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벨로퍼의 장기전략
1991년, 일본의 '토지신화'가 무너졌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도시 개발의 주역이었던 디벨로퍼들은 막대한 부채를 떠안았고, 자산가치 상승을 전제로 한 모든 사업 모델이 작동을 멈췄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2000년대 들어 도쿄는 다시 살아났다. 마루노우치, 롯폰기, 시부야 같은 도심 지역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버블 붕괴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일본의 종합 디벨로퍼들은 어떻게 도시를 되살렸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한국 부동산 시장이 나아갈 방향이 보인다.
일본 디벨로퍼들의 전통적 수익 모델은 단순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분양하거나 매각해 차익(Capital Gain)을 남기는 것. 1950년대 전후 재건 시기부터 1980년대 버블 절정기까지, 이 공식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1991년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 자산가격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개발만 하면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 디벨로퍼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자산가격 반등을 기다리며 버틸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일본의 종합 디벨로퍼들은 후자를 택했다. '개발 후 매각'에서 '개발 후 장기 보유·운영'으로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부동산을 '상품'이 아닌 '운영 자산'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수익 구조는 명확했다.
첫 번째 트랙 : 임대수익(Income Gain)
오피스, 상업시설을 장기 보유하며 안정적인 임대료를 받는다. 마루노우치를 130년간 운영해온 미쓰비시지쇼나, '경년우화(經年優化,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도시)' 철학을 내건 미쓰이부동산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트랙 : 선별적 유동화
2001년 J-REIT(일본형 부동산투자신탁) 출범 이후, 디벨로퍼들은 개발한 자산 중 일부를 리츠에 매각하며 현금을 회수했다. 이를 통해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계속 새로운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미쓰이부동산은 4개의 리츠를 스폰서하며 유동화의 선두주자가 됐다.
흥미로운 점은 스미토모부동산의 선택이다. 이 회사는 리츠 운용을 하지 않고 철저히 장기 보유·운영 전략을 고수했다. 대신 영업이익률에서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운영 수익성'으로 승부했다.
일본 종합 디벨로퍼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특정 지역에 대한 장기 책임 경영이다. 마치 봉건시대 영주가 자기 영지를 다스리듯, 각 디벨로퍼는 도쿄 도심 5구(치요다·츄오·미나토·신주쿠·시부야)에서 자신의 '담당 구역'을 오랫동안 가꿔왔다.
미쓰비시지쇼 : 마루노우치·오테마치 (비즈니스 중심)
미쓰이부동산 : 니혼바시·야에스 (점→선→면 확장)
스미토모부동산 : 신주쿠·롯폰기 (균형 포트폴리오)
도큐부동산 : 시부야 (철도 연계 개발)
모리빌딩 : 롯폰기·도라노몬 (대형 랜드마크)
이들은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게 아니었다. 도시를 '만들고(개발)' '기르는(운영)' 주연 배우였다. 건물을 짓고 나서도 계속 그 지역에 머물며 임대 관리, 이벤트 기획, 테넌트 유치, 브랜딩까지 책임졌다.
미쓰비시지쇼의 마루노우치 프로젝트는 '장기 운영'의 교과서다.
1890년부터 이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한 미쓰비시지쇼는,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순한 비즈니스 거리를 업무·상업·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도심으로 탈바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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