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진 순간, 다른 한쪽이 꺼지기 시작했다
상암동 MBS 편성국 회의실.
편성 국장, 예능국 CP,
연출 PD, 작가,
그리고 김서준과 한기준이
마주 앉았다.
연출 PD가 물었다.
"먹거리 토너먼트는 많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다른 점을
더 명확히 해야 합니다."
한기준이 대답했다.
"이건 골목상권 살리기가 아니라,
월세와 싸우는
사람들의 리얼리티입니다."
"먹고 마시는 장면이 아니라,
버티는 얼굴을 보여주는
생존의 방송이어야 합니다."
예능국 CP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포맷을
더 정교하게 다듬겠습니다.
'볼·먹·즐 3개 서사'를
동시에 따라가되,
각 참가자의 이야기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작가가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했다.
"각 회차마다 연습생 훈련,
먹거리 개발,
즐길거리 창업의
뒷이야기를 담고,
회차 후반부에는
이들이 하나로 만나는
구조로 가겠습니다."
연출 PD가 말했다.
"우리는 성공한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무릎이 부은 연습생들이
바닥을 박차는 연습실,
새벽마다 손가락을 데워 가며
국밥을 끓이는 주방을
더 오래 찍겠습니다.“
김서준이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버티는 얼굴이 있어야,
이 몰이 삽니다."
예능국 CP가 말했다.
"첫 방송 본선에는
연습생, 핸드메이드 소품샵,
먹거리 팀을 같이 올리겠습니다.”
“이 몰의' 볼·먹·즐'을
대표하는 팀들로 구성하되,
최종 결선에서는
가장 완성도 높은 다섯 팀을
겨루게 하겠습니다."
편성 국장이 정리했다.
"좋습니다.
이 방향으로
제작에 들어가겠습니다."
[장대동 페스타 포레몰]
[전국 크리에이터 오디션]
공고가 올라갔다.
[1년 차 임대료 렌트프리]
[2년 차 임대료 매출 연동]
[토너먼트 1등 팀은 렌트프리 2년]
[유성5일장 연계 가점]
[MBS 예능 방송 출연 기회]
***
그 주말,
서울 신림동.
겨울 초입,
낡은 연습실 바닥에
송곳 자국이 났다.
마른 어깨의 연습생이
그 위에서 계속 돌아섰다.
두 번 돌고,
세 번째에 미끄러졌다.
무릎이 바닥을 쳤다.
"다시."
회사 대표가 말했다.
말은 짧았고,
숨은 거칠었다.
난방비를 못 내
끊긴 히터 위로,
아이들 호흡이 하얗게 떴다.
연습생은 이를 악물었다.
군대 다녀온 지 반년.
이제 스물셋.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벽 한쪽에 AMD 공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장대동 페스타 포레몰]
[연습생 전용 지하 연습실 무상 제공]
[MBS<불 켜진 점포들> 출연 기회]
대표가 아이들을 돌아봤다.
"공연장은 없지만,
연습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구석에서 MBS 카메라가
조용히 렌즈를 들이댔다.
오늘 촬영분은
3회 방송 오프닝 VCR로
쓰일 예정이었다.
***
홍대 뒷골목 주택가 지하,
좁은 작업실.
스물여섯 여자가
구리선을 구부렸다.
귀걸이 하나를 만드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책상 위에 완성된 귀걸이
다섯 쌍이 놓여 있었다.
월세 고지서가
벽에 붙어 있었다.
8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오른 지 두 달.
재계약서에 내년엔
12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년 이맘때,
합정동 작업실에서도
이렇게 쫓겨났었다.
문 앞에 'AMD 공고 전단'이
끼워져 있었다.
박스 안에는
포장해 둔 수공예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자는 전단을 집어 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임대료'
'렌트프리'
두 문장이 눈에 박혔다.
한 달째 멈춘
온라인 주문창이 떠올랐다.
손가락이 떨렸다.
작업실 문틈으로
붉은 불빛이 스며들었다.
MBS촬영 스태프가
책상 위 소품들을
하나씩 훑었다.
이 역시
본선 소개 영상으로 쓰일
촬영이었다.
***
그로부터 사흘 뒤,
AMD 마곡 본사 1층 로비.
대기 줄이 길었다.
좁은 연습실에서
밤을 새운 얼굴들.
밤 버스 타고 상경한
지방 연습생들.
곰팡이 핀 벽 앞에서 연습하던
신생 기획사 대표들.
그 사이로 노트북 가방을 멘
젊은 얼굴들이 섞여 있었다.
한기준이
로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표님,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습니다.“
김서준이 창밖을 바라봤다.
"버텨 온 사람들은,
살아남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일주일 만에
3,210여 개 팀이 지원했다.
한 달 뒤,
1차 서류 심사를 통과한
500개 팀이
권역 예선에 올랐다.
2주간의 치열한 경쟁 끝에
300개 팀이
합숙 팝업에 진입했다.
장대동 페스타 포레몰 3층에
간이 무대와 의자가 놓였다.
300개 팀이 3주간
실전 팝업을 진행했다.
중앙홀 스크린에
실시간 데이터가 떴다.
체류시간, 재방문율,
카드매출, 분쟁건수.
네 개 막대그래프.
김서준이 매일 오전 7시,
데이터를 점검했다.
체류 +18분,
재방문 +9%p.
문제도 있었다.
위생 재발 2회,
원가 붕괴,
리뷰 급락.
결과적으로,
50개 팀이 탈락했다.
***
MBS 예능<불 켜진 점포들>
3회 방송.
자막이 떴다.
[3주 팝업 최종 결선,
몰 입점 200개 팀 확정]
카메라가 중앙홀을 비췄다.
250개 팀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스튜디오에서는
MC와 게스트 패널이 앉아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200팀의 몰 입점이
확정되는 날입니다."
화면이 전환됐다.
실시간 순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팀의 영상이
스크린에 올라갔다.
심사위원 점수와 실시간 투표가
이들의 운명을 정한다.
"저희는 '숨만두 랩'입니다."
20대 후반 남성,
옆에는 유성시장의
70대 할머니.
반대편에는 흰 셰프 재킷의
이탈리아 유학 동료가 섰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전통시장 만두집을
30년 했는데,
이제 건강 때문에
가게를 접으려고 했어요.
임대료도 버겁고..."
손자뻘 되는 청년이
말을 받았다.
"할머니 손맛을
과학적으로 지키고 싶었습니다.
저는 로마에서 파스타를 배웠고,
유성시장에서 만두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숨을
보여 드립니다.
한식 만두,
이탈리아 라비올리,
홍콩 딤섬.
속은 하나, 겉만 다릅니다."
영상이 켜졌다.
할머니의 손이 반죽을 접었다.
느린데도 빨랐다.
같은 동작이 끝없이 이어졌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흘렀다.
"반죽은 세 번,
숨을 쉬게 해야 해."
청년이 받았다.
"우리는 그 숨을
3-10-20으로 정했습니다.
나눔 반죽 후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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