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어디에 둘 것인가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쳐
서류와 하드디스크를
쓸어 담아 갔다.
그로부터
스물네 시간이 지났다.
사무실에는
그들이 비워 놓고 간 캐비닛만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한기준은
불 꺼진 회의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다시 하루가
밝아오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평택 고덕의
모든 거래가 투명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광고비 리베이트를
우리가 받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게 안 되면..."
말끝을 흐렸다.
책상 위 일정표를 봤다.
임시주총까지 72시간.
한기준은
머릿속에서 주총 상황을
미리 그려봤다.
'국세청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주총이 열린다.'
'EM은
숫자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EM은
세무조사 카드를 앞세워,
현 경영진의 도덕성과
불안한 경영 능력을
집요하게 부각시킬 것이다.’
'주총장에서
루머를
이미 확정된 사실처럼 포장해
끝없이 떠들어댈 것이다.'
'언론과 소액주주를 앞세워,
주총장 한복판에서
찬반 표로
갈라 세우려 할 것이다.'
한기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EM이 흔드는 건
숫자가 아니라 신뢰였다.
그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남은 72시간을
버텨야 했다.
***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첫날.
하연이 눈을 떴다.
초점이 흐렸다가
다시 또렷해졌다.
"...아빠?"
김서준이
침대 옆으로 달려갔다.
"하연아!"
하연이
눈을 옆으로 움직였다.
머리 위 형광등 불빛,
심장 박동의 모니터 소리,
팔에 꽂힌 링거줄.
그리고,
퀭한 얼굴의 아빠.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엄마는?"
김서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하연의 손을
감싸 쥐었다.
따뜻했지만,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정적이 병실 공기 위에
엉겨 붙었다.
"엄마는 어디 있어?"
하연이 다시 물었다.
"나랑 같이 있었잖아.
엄마도 많이 다쳤어?..."
하연의 시선이
천천히 병실을 훑었다.
침대가 두 개인 병실에
옆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엄마 어디 있어?...
왜 여기 없어?..."
하연의 눈이
다시 아빠 얼굴로 돌아왔다.
붉게 부은 눈,
터진 입술,
며칠을 못 잔 사람의 숨.
"아빠, 말해줘.
엄마 어디 있어?..."
그제야
김서준의 어깨가 무너졌다.
"하연아..."
목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는... 끝까지
널 지키고 떠났어."
침대 위 공기가
한순간 멎었다.
하연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가
말을 잃었다.
"거짓말...이지?"
숨이 가늘게 떨렸다.
"엄마..."
처음 부르는 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두 번째는
목 안을 찢고 나왔다.
"엄마...!"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크게 울 수도 없었다.
가슴 깊은 데서
한꺼번에 치밀어 오른 울음이
갈비뼈를 밀어 올렸다.
어깨만 작게 떨리며
헐떡이듯
숨 섞인 울음이
새어 나왔다.
팔에 꽂힌 링거줄이
어깨 떨림을 따라
계속 흔들렸다.
숨을 고르지 못한 채
이름만 불렀다.
"엄마... 엄마..."
김서준이
말을 이었다.
"충돌 직전에...
엄마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몸을 네 쪽으로 감쌌대."
그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팔로 널 감싸 안은 채로
그대로 부딪쳤어.
그래서...
네가 덜 다쳤대."
말이 끝나는 순간,
하연의 눈꺼풀이
세게 감겼다.
유리창 밖 어두운 도로,
쏟아지던 비,
옆으로 기울던 차 안.
그 틈에서
자기를 막아주던
엄마의 체온이
뒤늦게 밀려왔다.
'나 때문에...'
가슴 한가운데서
짧은 문장이
서늘하게 박혔다.
"엄마..."
두 글자만
겨우 나왔다.
그 뒤에 이어질 말들은
목 안에서 엉켜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회복되지 않은 몸은
침대 위에서
조용히 떨렸다.
이번에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아픈 데가 달라졌다.
팔에 꽂힌 링거줄이
점점 더 크게
앞뒤로 흔들렸다.
한참 동안
하연의 어깨만
계속해서 들썩였다.
그 옆에서
김서준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눈을 감자
눈물이 조용히
볼을 타고 떨어졌다.
"마지막에...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연이가 내뱉은 말이
김서준의 가슴을 찔렀다.
엄마가 혼자
그 어둠을 다
막아냈다는 사실이,
자기 대신
몸으로 부딪쳤다는 사실이,
늦게,
너무 늦게
가슴 깊이 들어왔다.
하연의 손가락이
힘없이 오므라들었다.
잡고 있던
아빠 손을 놓지 못했다.
김서준이
조심스럽게 하연을 안았다.
많이 움직이지 못하게
팔만 살짝 둘렀다.
"하연아...
그래도 살아줘서 고마워.
이제... 남은 시간은
아빠가 지킬게."
***
[임시주총 당일]
오전 10시, 주총장.
의장이 단상에 섰다.
망치가 공기를 쳤다.
"제1호 의안,
이사 해임 건.
제안자 측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EM 파트너 두 명이
좌측 블록 첫 줄에 앉았다.
한 명이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갔다.
프로젝터가 켜졌다.
***
<슬라이드 1>
[AMD 경영진 해임 사유]
① 수익의 질 저하
[개발사업 중단]
[저가 중개사 컨설팅 집중]
[주주이익 훼손]
EM 수석 파트너
에반 폴크가 말했다.
"김서준 대표와 임원들은
AMD 수익의 질을 떨어뜨려서
주주이익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
<슬라이드 2>
[AMD 경영진 해임 사유]
② RCPS 전환 시, 주주가치 희석
[RCPS → 보통주 전환]
[기존 지분율 하락]
[주주가치 훼손]
"또한 RCPS가 전환되어
기존 주주 가치가 희석됩니다."
***
<슬라이드 3>
[AMD 경영진 해임 사유]
③ 성장 둔화 : 평택 고덕 프로젝트 이후
2년간 직접 개발 중단
[대형 프로젝트 개발 0건]
[파이프라인 부재]
[기업가치 지속가능성 의심]
"고덕 이후 대형 딜이 없습니다.
지속가능성이 의심됩니다."
***
<슬라이드 4>
[AMD 경영진 해임 사유]
④ 거버넌스 리스크
[데이터·컨설팅·개발 혼재]
[역할·책임 불명확]
[거버넌스 리스크 확대]
"데이터·컨설팅·개발이 뒤엉긴
통제 불능 조직 구조여서
거버넌스 리스크가 커집니다."
***
<슬라이드 5>
[AMD 국세청 세무조사 리스크]
[조세포탈 의혹 조사 착수]
[잠정 추정 과징금 : 최대 300억]
[주주가치 직접 훼손 가능성]
에반 폴크가
말을 이었다.
"여기에 더해,
AMD는 지금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습니다."
"조사 사안의 성격상,
과징금은
최대 300억까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과징금은
단순한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주주 자산의
직접 손실입니다."
"현 경영진 아래에서
조세 리스크까지 터진 상황에서,
대표가 바뀌지 않는다면,
누가 이 회사를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회의장 뒤쪽에서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300억?"
몇몇 기관투자자들이
메모를 멈추고
스크린만 바라봤다.
숫자 하나가
홀 안 공기를
무겁게 눌렀다.
에반 폴크가
천천히 말을 맺었다.
"이 정도 규모의 리스크를
일으킨 경영진을,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지금 경영진이
해임되지 않으면,
지배구조는
교정되지 않습니다."
"이제 선택은
주주 여러분의 몫입니다.“
발표가 끝났다.
의장이 물었다.
"AMD측,
반대의견 있습니까?"
***
한기준이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노트북을 열었다.
"우리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
'검증된 현금흐름'으로 존재합니다."
스크린에 성과가 보여졌다.
***
<슬라이드 1>
①AMD 재무 구조 개선 – 디레버리징
[부채비율: 268% → 187% (–81%p)]
[레버리지 배수: 5.1x → 3.7x]
[3년 연속 차입 축소]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디레버리징]
"3년 동안,
AMD는 빚의 무게를
81%포인트 줄였습니다."
중간열 투자자 한 명이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3년 만에 81%p... 진짜네."
프록시 애널리스트가 노트에 적었다.
'디레버리징 속도 예상 초과'
한기준의 설명은 계속됐다.
***
<슬라이드 2>
②이자 상환 능력 회복
[이자보상배율: 1.2x → 2.4x]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 2배 커버]
[차입의존 → 영업현금흐름 중심 전환]
[재무적 체력이 두 배로 커진 3년]
"우리는 버티는 회사가 아닙니다.
이미 이기는 판으로
체계를 바꿨습니다."
***
<슬라이드 3>
③유휴자산 정리 + 영업이익
[유휴자산 4건 처분: 현금 520억 확보]
[핵심은 영업이익 312억]
['자산 매각 비중 < 영에서 나는 이익']
"유휴자산을 처분해
520억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숨통을 튼 건,
312억의 영업이익입니다."
***
<슬라이드 4>
④AMD 비즈니스 모델
[직접 개발사 → 지원 플랫폼]
[지역 전문가 + 중앙 컨트롤 타워]
[데이터·리스크·자금 체계 제공]
[현장과 자본을 잇는 플랫폼]
"우리는 직접 개발로만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
"지역과 자본이 같이 버는,
상생형 지원 플랫폼입니다."
***
<슬라이드 5>
⑤데이터가 향하는 곳
[수집·검증된 부동산 정보 DB화]
[정보 비대칭 해소 → 전세사기 예방]
[사회적 약자 주거 리스크 완화]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지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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