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에 찍힌 200원, 정책의 무게

왜 정부는 환경을 말하면서 현장을 흔드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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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한 줄이 바꾸는 풍경


카프카의 소설 『성』(1922)에서 측량사 K는 성에 들어가려 애쓴다. 그러나 성으로 가는 길은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멀어진다. 관료들은 그를 불렀다고 했지만,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규칙은 있으되 설명은 없고, 문은 있으되 열리지 않는다.


2026년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컵 가격 표시제' 간담회가 열렸다.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메뉴판에 4500원을 써야 하나요? 아니면 4300원에 컵값 200원을 따로 써야 하나요?" 정부 담당자는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성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구불거린다.

왜 환경 정책은 현장에서 늘 혼선으로 귀결되는가.


정책의 윤곽과 배경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5년 12월 23일 국회에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다. 핵심 수단 중 하나가 '컵 따로 계산제'다. 음료 영수증에 일회용컵 가격을 100~200원 수준으로 별도 표기하도록 하는 제도다. 2027년 시행을 예고했다.


정부는 이 제도가 기존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대안이라고 설명한다. 제주와 세종에서 시행 중인 보증금제는 매장 참여율이 33.1%에 그쳤다. 라벨 부착, 별도 보관 공간 마련, 위생 관리 등 소상공인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컵 가격 표시제는 이런 물리적 부담 없이 소비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달랐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POS·키오스크 시스템 변경 비용, 안내 문구 수정, 소비자 설명 부담이 모두 매장 몫"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영수증에 '컵 가격 200원'이 찍히는 순간 체감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정책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락가락의 계보


환경 정책의 혼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플라스틱 빨대 규제, 2023년 종이빨대 권장, 2023년 11월 규제 무기한 유예, 2025년 다시 전면 금지 방침. 4년 연속 지침이 바뀌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은 정부 정책을 믿고 설비에 투자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한 업체 대표는 "정책을 믿은 죄밖에 없다"고 국정감사에서 호소했다. 수억 원 어치 재고를 쌓아두고도 납품길이 막혀 줄줄이 파산했다. 환경부 스스로 2021년에는 "종이빨대가 플라스틱 대비 환경영향 감소율 72.9%"라고 분석했다가, 2025년에는 "종이빨대도 특수 코팅이 필요해 환경에 악영향이 크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마찬가지다. 전국 확대를 예고했다가 소상공인 부담을 이유로 지자체 자율 시행으로 후퇴했다. 이제 그 자리에 '컵 가격 표시제'가 들어선다.


반복되는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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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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