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든 손이 거부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붕괴였다
1830년 여름, 영국 켄트주 엘햄 밸리의 어느 농장. 8월 28일 밤, 첫 번째 탈곡기가 파괴됐다. 기계를 부순 사람들은 "캡틴 스윙"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경고장을 보냈다. 10월 셋째 주까지 100대가 넘는 탈곡기가 똑같이 부서졌다.
그보다 20년 전인 1811년, 같은 섬나라의 노팅엄셔에서는 방직기와 편기가 밤마다 망가졌다. 이번에는 "네드 러드 장군"이라는 유령 같은 이름이 공장주들을 떨게 만들었다. 1816년까지 이어진 이 운동은 러다이트 운동으로 기록됐다.
역사는 이들을 "기계를 부순 폭도"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이 망치로 깬 것은 쇠붙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가 앗아간 미래를 부쉈다.
러다이트 운동의 배경은 1811년부터 1816년 사이 영국 중부와 북부 직물 공업 지대에서 시작됐다. 노팅엄셔·요크셔·랭커셔가 중심이었다. 방직기와 편기가 숙련공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구조였다.
숙련공은 기술을 익히는 데 수년이 걸렸고, 그 기술은 협상력이었다. 하지만 기계는 미숙련 노동자도, 여성도, 아동도 투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생산성은 올랐지만 임금은 그대로였다. 어떤 곳에서는 빵 한 개를 살 돈도 벌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스윙 폭동은 1830년 농업 지역에서 일어났다. 탈곡기가 표적이었다. 탈곡은 겨울철 농업 노동자의 주 수입원이었다. 탈곡기 도입 전에는 전체 농업 노동자의 25%가 이 작업에 투입됐다. 기계 한 대가 수십 명의 몇 달치 수입을 지웠다.
당시 영국은 전쟁이 끝난 뒤 곡물 가격이 폭락하고 노동력이 넘쳤다. 1828년과 1829년 흉작이 이어졌다. 1830년 겨울을 앞둔 농업 노동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 공포가 탈곡기를 향했다.
러다이트 운동을 "기술 공포증"으로 읽는 것은 절반만 맞다. 노동자들은 기계 자체를 미워한 게 아니었다. 기계가 만든 새로운 규칙을 거부한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