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리볼빙 문화를 오해하게 만드는 금융 설계의 차이
1. 빚은 성실의 척도가 아니다
1978년, 미국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는 《돈의 사회적 의미》에서 돈이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관계"라고 주장했다. 같은 1달러라도 월급으로 받은 돈, 선물로 받은 돈, 도박으로 번 돈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르게 취급된다. 빚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에서는 빚을 진 사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어떤 사회에서는 빚을 "자산 관리의 도구"로 바라본다.
2024년 현재, 미국 신용카드 잔액은 1.2조 달러를 넘어섰다. 카드 소지자의 절반 이상이 매달 잔액을 이월하며 살아간다. 한국인의 눈에는 "저 사람들은 카드값을 왜 안 갚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은 전제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빚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면, 빚을 다루는 시스템도 다를 수밖에 없다.
북미 신용카드 시스템의 핵심은 '리볼빙(revolving)'이다. 매달 청구서가 도착하면 카드 소지자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다. 전액 상환, 또는 최소결제금액만 납부. 한국에서는 전액 상환이 사실상의 기본값이다. 카드값은 그달에 정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 조치를 하지 않으면 최소결제 후 잔액 이월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2024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가계부채 잔액은 약 17조 6,900억 달러에 이르며, 신용카드 미결제 잔고는 전년 대비 13.1% 증가했다. 신용카드 평균 금리는 21.59%로, 2019년 월별 데이터 추적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최소결제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북미권이지만 결이 다르다. 캐나다 주택담보대출은 25년 상환이 기본이지만, 대출 계약기간(Term)은 보통 5년 이하로 설정된다. 계약이 끝나면 금리를 재협상해야 한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리볼빙을 오래 끌면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리볼빙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도가 그 선택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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