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교통·사회망이 결정하는 노년의 거주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노인은 난간을 잡은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택배함에서 약 봉투를 꺼내며, 어느 약사가 오늘은 재고를 넉넉히 확보했는지 가늠하고, 현관 앞 복도 끝에선 매일 같은 밝기로 켜지는 LED 조명을 확인한다. 병원 예약일엔 어느 버스가 앉아서 갈 확률이 높은지, 재활치료 뒤엔 어디서 택시가 잘 잡히는지, 저녁 시간엔 어느 마트 계산대가 덜 붐비는지도 이미 몸이 기억한다. 그는 전용 84에서 59로 줄였지만, 주소는 그대로 두었다. 사람들은 그 결정을 “면적의 축소”라고 부르지만, 그에게 그것은 “마찰의 축소”였다.
나이가 들수록 집은 평수보다 동선이 된다. 노년의 하루는 병원—약국—산책—모임 같은 짧은 이동들의 합으로 구성된다. 새로운 동네로의 이사는 방의 개수를 재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이 동선들을 처음부터 다시 짜는 일이다. 낯선 내과의 접수창구, 처음 가보는 약사의 질문, 익숙하지 않은 버스 환승. 이런 작은 변화들이 하루의 체력을 빼앗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같은 길을 걷고 싶다.”
강남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선택에는 네 가지 이유가 겹친다. 첫째는 확실성의 경제학이다. 다른 지역에도 생활편의는 있다. 그러나 거기서의 편의는 ‘있을 법한 것’이고, 여기서의 편의는 ‘이미 검증된 것’이다. 어느 병원이 MRI 예약이 빠른지, 어느 시간대에 재활치료실이 한산한지, 어느 마트가 고기 손질을 잘하는지까지 축적된 생활 데이터가 있다. 노년의 의사결정은 가능성보다 확실성 쪽으로 기운다.
둘째는 사회망의 밀도다. 아이 학교, 자녀 직장, 나의 동호회, 주말 미사나 예배, 오래 들르던 카페와 편의점. 이름을 불러주던 바리스타의 인사, 경비실 앞 짧은 농담, 단골 의사의 눈인사 같은 사소한 연결들이 불편을 줄여 주는 윤활유가 된다. 집을 옮긴다는 건 이 사회망을 해체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같은 평형이라도 이 윤활유가 축적된 동네의 체감 효용은 다르다. 결국 사람들은 넓은 집보다 “내가 사는 방식이 끊기지 않는 동네”를 산다.
셋째는 시간을 사는 선택이다. 넓은 거실보다 통원 시간이 짧은 진료 동선이, 전망 좋은 발코니보다 환승 없는 노선이 노년에게는 더 직접적인 보상이다. 30분 덜 걷고 20분 덜 기다리는 것이 하루의 컨디션을 지킨다. 의료·교통·서비스가 고도로 모여 있는 곳은 평당가가 비싸다. 그러나 그 가격에는 시간을 절약하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조금 더 작은 집을 선택했지만, 그로써 매일의 시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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