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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경 Oct 30. 2020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공동체 지원농업CSA

대만 선꺼우 마을


대만 이란현 션꺼우 마을 CSA 곡동구락부. ⓒ라이칭송



‘역사상 유례없는’이라는 말이 이리 자주 쓰였던 적이 있었을까. 연일 새역사를 쓰고 있으며, 일상은 완전히 변했다. 왜 이러한 세상을 맞닥뜨리게 되었는가에 관한 다양한 원인 분석과 비판 속에서 먹거리 위험과 먹거리 위기, 기후 위기와 생태, 환경문제 등을 불러온 현재의 농식품체계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동체 지원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이하 CSA)은 농민과 소비자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직접적 연대 방식으로, 농민과 소비자가 먹거리 생산 과정을 공유하고 위험을 분담하는 친밀하고 적극적인 대안먹거리운동이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공동체가 농업을 지원한다기보다 농업을 통해 작은 마을이나 지역, 혹은 더 큰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캐나다 이스트 밴쿠버의 한 초등학교. 방치된 정원을 채소텃밭으로 만들어 공간을 살렸다.


도시를 재생하는 CSA_캐나다 밴쿠버
밴쿠버시의 동쪽, 이스트 밴쿠버에 있는 한 초등학교. 깔끔하게 정돈된 학교 건물 앞에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구석진 곳 나무와 꽃밭 사이 이곳저곳에 텃밭이 있었다. 원래 특별한 용도 없이 방치된 정원이었는데, ‘프레시 루츠Fresh Roots’라는 단체가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재배하면서 다시 살아난 공간이라고 했다.


일반 주택의 마당을 빌려 농작물을 재배하여 지역주민에게 공급한다.


  프레시 루츠는 이 학교뿐 아니라 일반 주택의 뒷마당 등 총 일곱 군데를 임차하여 텃밭을 일구고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 방식이 특이했다. 소비자 회원을 연초에 모집하고 이들의 연회비로 씨앗과 농자재 등 농사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한다. 5월에서 10월 사이 회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제철 채소를 공급한다. 채소가 담긴 상자를 작은 트레일러를 단 자전거를 이용하여 약속된 장소에 가져다 놓으면, 소비자 회원들은 그곳으로 와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채소 박스를 가져간다. 탄소 발생 제로. ‘지역 먹거리’를 넘어 ‘동네 먹거리’라 할 수 있을 정도다. 

  2010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프레시 루츠의 공동 설립자인 일라나 라보우Ilana Labow 씨는 현장을 안내하면서, 이 사업의 의미를 “사람과 뿌리를 연결하는 생명의 뿌리 운동”이라고 했다. CSA를 통해 소비자가 농업을 지원하는 ‘공동생산자’ 본래의 역할뿐 아니라, 동네를 오가면서 이웃의 마당에서 크는 채소를 지켜보고 가정의 음식물쓰레기가 퇴비로 변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지하게 된다. 마당을 내어준 집주인에게는 임차료 대신 농산물을 제공하는데, 초등학교의 경우는 텃밭 자리를 내어주면서 임대료를 받지 않았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텃밭을 잘 가꾸는 것과 농산물 재배과정을 교육과정에 넣어 이 텃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교의 CSA 텃밭은 교과과정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레시 루츠는 이후 2013년에 밴쿠버 학교 이사회와 협약을 맺고 ‘Schoolyard Market Garden’이라는 교육농장을 세웠다. 이곳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각 학교 식당, 지역 음식점에 납품하고 소비자 꾸러미로 활용하는 한편, 다양한 현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꾸준히 활동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공동체 차원의 CSA를 운영하는 션꺼우 마을.



지역에 다양함과 활기를_ 대만 이란 현 션꺼우 마을
2010년 프레시 루츠의 CSA가 도시농업과 연결되고 생태, 환경, 먹거리의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적’ 성격이 강했다면, 2019년에 방문한 대만 션꺼우 마을의 사례는 한 농가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의 CSA라는 면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20년 전 귀농해 마을 커뮤니티를 이끄는 라이칭송賴青松 씨는 소비자 예약구매, 계획 생산, 위험 분담을 기본으로 하는 중화권 최초로 CSA 개념을 도입했다. 


션꺼우 마을의 대표 농산물은 쌀이다.



  “쌀농사를 지으면서 곡동구락부穀東俱樂部를 발족했어요. 곡동의 중국어 발음이 주주(股東[g dōng])와 비슷해서 주주가 된다는 의미가 있는데 주식이 아닌 쌀에 대한 권리를 산다는 의미죠.” 
  곡동구락부의 현재 소비자 회원은 약 400명, 유기농의 가치를 알고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곡동구락부는 양백갑兩佰甲 프로젝트와 결합해 더욱 발전했다.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양원취안楊文全 씨는 150여 명의 농민이 양백갑(200ha) 규모로 농사짓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양백갑이란 단어에 사람 인人이 여러 개 있죠? 사람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만 이란현 션꺼우 마을 입구.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현재 션꺼우 마을에 정착한 귀농 귀촌인이 약 150명쯤 되는데, 이들 중 25~45세가 약 80%를 차지한다.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농사 경험이 없는 전문직, 기술직 종사자가 많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배경이기도 하다. 양백갑 프로젝트에서 2019년 만도생활(慢島生活, Slow Island Life Company)이라는 회사가 탄생했고, 개인의 커뮤니티에서 지역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커뮤니티 활동을 확장하는 폴랫폼이 되고 있다.


션꺼우 마을 커뮤니티를 이끄는 라이칭송 씨.



  “도시에서와는 다르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지역공동체 면에서는 이들의 기술과 경험으로 새로운 일들을 함께 도모하고 다양한 문화·경제 활동이 가능해졌어요.”
  양백갑 프로젝트는 CSA가 소비자와 농민의 긴밀한 유대를 넘어서, 마을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그리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가능성과 확장성을 기대하게 한다. 


대만 션꺼우 마을 양백갑 프로젝트는 마을과 지역, 도시로 공동체 의미를 확장한다.



‘멈춤’의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오래된 만화영화가 있다. 주인공 폴과 삐삐, 찌찌와 같은 친구들이 4차원 세계에 갇혀있는 친구 니나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내용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바로 결정적 위기 순간에 멈추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주인공이 지닌 가장 막강한 전투력이지만, 그리 길지 않아서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일행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긴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이 멈춤의 시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앞으로 닥칠 더 심각한 위험에 대비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이제 방향을 다시 잡을 때다. 시간의 마법이 풀리고 세상이 제 속도로 돌아가도, 더는 길을 잃지 않도록. 




TAGS: 대산농촌문화 2020여름호 2020. 7.29.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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