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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Nov 21. 2024

#30. 옥수수밭 이야기

- 선택지가 많으면, 선택을 못하는 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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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메리카의 어느 인디언 부족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관습이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넓은 옥수수 밭에서 가장 큰 옥수수를 따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한 번 지나온 길은 되돌아갈 수 없고, 한 번 지나친 옥수수는 다시 가서 가져올 수 없다. 옥수수는 단 한번 고를 수 있으며,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나도 바꿀 수 없다.

     

부족민들은 자신의 딸이 넓은 밭에서 커다란 옥수수를 따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모든 딸들이 작고 볼품없는 옥수수를 골라서 나왔던 것이다. 모든 딸들이 앞으로 ‘더 커다란 옥수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옥수수를 따지 않지만, 결국 끝까지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옥수수밭 끝 즈음에서 급하게 옥수수 하나를 딴 뒤 밭을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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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지금의 나는 옥수수밭 한가운데 갇혀있는 것 같다.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옥수수를 고르느라 모든 정열을 쏟고 있지만, 수렁에 빠져 아무런 옥수수도 만지지 못한 채 이런저런 방황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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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선택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 선택지 중 최적의 선택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 것인지, 언제 출근할 것인지와 같은 작은 문제부터, 어떤 전공을 공부할 것인지, 어떤 배우자를 만날 것인지 등, 인생의 모든 것이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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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선택지가 많은 것이 좋았다. 축구 선수를 꿈꾸면,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고, 군인을 꿈꿀 때면 충분히 군인이 될 수 있었다. 100개의 기회가 있으면 100개의 기회 모두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100개의 기회를 다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참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선택한 후 또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을 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찾는다고 할 때 마음을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는 의미는 이전의 사람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성 친구를 사귈 때 모든 사람을 사귀어본 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만난 경험에 비추어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거나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선택하는 것이 무섭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과 환상에 빠져 손아귀에 쥐어진 기회마저 허망하게 날려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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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정말 나는 그랬다. 이성 친구와 교제를 하면서도 가슴속 한 구석에는 ‘더 좋은, 더 나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못된 욕심이 맴돌기도 했다. 어쩌다 교제 중인 이성과 다투기라도 할 때면 어떻게든 관계 내에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애초에 완벽하지 않은 상대가 내 마음을 전부 헤아리지 못해서라며 책임을 남 탓으로 돌려놓고서 그저 문제를 덮고 넘겨버리기에 급급했다. 정말로, 나의 사랑의 형태는 이러했다. 마치 옥수수의 몇 알이 상해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옥수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나를 잠식시키는 것이다. 애초에 시작이 이러하였으니 상대가 내게 얼마나 큰 애정을 쏟는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저 나는 이 사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옥수수가 맞는 것일까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느끼는 점은 내 생각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적다는 것이고, 또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기회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고 한들, 그 이후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대체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여전히 들었다. 이렇게 바보같이 계속해서 인연을 흘려버렸다. 직장 생활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은 대우와 복지가 내게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알지도 못하는 희망에 한 곳을 떠나고, 또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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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경험하는 것이 많아진다. 여태까지 수많은 경험치를 쌓아 왔고, 청년 대로서 경험할 수 있는 폭의 30% 이상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은 일러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선택하고, 그 선택에 만족할 줄 아는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치 ‘쾌락주의’를 표방하며, 현 상황에 만족할 줄 알았던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에 만족할 수 있는 자세가 오히려 최상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제, 옥수수를 골랐다면 그 예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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