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내 삶에 찾아온 귀인들

by 여행사 작가 류익

-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인연과 닿았는데 그중 특히 나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아해 주시거나, 삶과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맨 처음으로는 단연 학창 시절에 만난 은사 님이 계시는데 그중 특히 내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치신 분은 고교시절의 담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평소에 글을 쓰는 것과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 내게만 슬쩍 지역에서 ‘문학 캠프’가 열린다며 문학에 대해 조예를 넓히고 싶다면 참여해 볼 것을 독려해 주셨다. 나는 그 길로 지역 문학 과정에 참여하여 평소 동경했던 소설가나 시인 등 쉽게 뵐 수 없는 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처음으로 문학에 대한 꿈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었다. 작가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이나 마음으로 작품을 집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이는 내게 말할 수 없는 울림을 선사해 주었다.

당시 은사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또 그것을 경험하게 해 주시면서 내 진로나 미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셨다.


-

기억이 뚜렷한 두 번째 귀인은 군대 시절 만났다. 학창 시절 나는 개인주의가 아주 강한 학생이었다. 강의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면 대놓고 다른 과목을 공부한다거나 했었고 심지어는 수업 도중에 학교 밖 강가를 따라 한참이나 산책을 했던 적도 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면 아닌 거고 내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완전히 유아독존(唯我獨尊)에 심취해 있는 반항아처럼 행동했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조직에 순응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었기에, 남들 눈밖에 나는 경우가 확실히 많았다.


하지만 당연히도 군대라는 곳은 그럴 수 없었다. 시키면 해야 하고, 그렇지 않는다면 감당하지 못할 보복이 돌아오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군에 입대했을 때는 긴장한 탓에 바싹 군기든 척을 했었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그곳의 사회가 익숙해졌다 싶을 때는 내가 하기 싫은 일로 점철된 그 일상이 너무나도 괴롭게만 느껴졌다. 내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는데, 그곳에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해야 하니 그것이 정말 지옥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부대의 간부를 보좌하는 행정병 내지는 보좌역 역할을 맡았는데, 나와 매일 마주치며 일을 함께 했던 행정보급관님은 정말이지 매일같이 내 마음 상태를 보살펴 주시고, 전역 후의 비전을 말씀해 주시고, 때로는 엄하게 꾸짖기도 하시며 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잘 융화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마음 가짐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조직에서 내 역할을 잘 해내었을 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성인이 되어서야 조직에 적응하고, 또 순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

또 다른 은인은 이역만리 타지인 스리랑카에서 조우했다. 나는 대학 시절 2년간 휴학계를 내고 스리랑카 산골로 찾아가 농촌 개발 활동을 했었다. 스리랑카로 떠나게 된 이유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반 평생을 봉사하며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서 감명을 많이 받았고, 언젠가는 그를 따라 해외 봉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대학시절이라는 이른 시기에 우연히 정부에서 진행하는 국제개발 사업에 연이 닿아 2년간 스리랑카로 파견되었고, 현지인들과 함께 버섯을 만들어 현지 시장에 판매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군대를 막 전역한 애송이였던 나는 농업 지식은 물론 해외 생활의 경험도 전무했지만 신진 농법을 전파하겠다는 뜨거운 마음만을 안고 이름도 생소한 스리랑카라는 국가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스리랑카 지소 소장님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 주셨다. 외국살이가 처음인 나에게 기본적으로 외국인을 비즈니스로 상대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알려주셨고,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행동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을 몸소 보여주셨다. 한국에만 있었다면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에서의 비스니스 매너 혹은 개발 도상국에서의 한인으로 살아가는 생활 전반에 비추어 삶을 두루 보살펴주셨고 또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약 2년간 해외에서 별문제 없이 생활했으며, 여전히 지금도 외국인 동료 혹은 고객을 만날 때에 그 태도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이외에도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해 주신 분들이 무수히 많다. 나의 경력 개발을 위해 꾸준히 마음을 써주시던 대학 교직원 선생님, 교환학생 시절 일본 생활에 불편한 점 혹은 몸이 아픈 것은 없냐고 늘 챙겨주시던 교양 수업 교수님, 기쁜 일이 있으면 늘 옆에서 같이 기뻐하고 축하해 주던 동네 PC방 사장님, 그렇게도 원하던 상경을 할 수 있게 나를 조직으로 초대해 주신 회사의 상사님,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선뜻 내게 출간 제의를 해준 출판사 대표님까지 정말 셀 수 없이 감사한 마음들이 가득하다.


모든 이의 삶의 귀인이 있듯,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에서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삶의 스승들을 만났다. 지금 내가 지어내는 생각들은 모두 나를 사랑해 주셨던 분들이 불어넣어주신 것들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덕분에 비로소 이 글과 나의 파편과도 같은 생각들이 비로소 정제되어 빛을 발한다.


많은 이의 사랑 속에 결국 이 글을 적었으니, 이 글은 모두 당신 덕분에 그리고 당신과 함께 쓴 글이 되겠다.


늘 가슴속에 품고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2. 취미를 만드는 것이 취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