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체면치레

by 여행사 작가 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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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의 성적표를 받아 들 때면

자그마한 체면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고까운 노력들을 하였나

부리나케 발버둥을 쳤었나

생각할 때가 있다


직장이 없는 친구를 위로하는 술집에서,

비록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주선자를 생각하던 양식집에서,

얼굴도 모르는 까마득한 나이차의 동문 후배와 함께한 고깃집에서,

내가 받았으니 안 주기가 무안해 뒤적거리던 메신저 속 선물함에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눈치 주지 않았지만

그 알량한 핏대를 세운답시고

먼저 일어나 계산대 앞에서 당당히 내밀던

나의 뭉툭한 칼날


체면치레를 한다며

손아귀에 쥔 모래들을 모두 흘려버리고

남는 것은 한 줌의 바람 줄기

선인장, 그리고 핏기 어린 나의 혈관


한 달의 성적표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참 열심히도 나의 자존을 지켜내기 위해

이렇게 부단히도 애썼구나,

안심하며 느껴지는

관자놀이의 통각


아픈지도 쓰린지도 모르는 채

몽롱해진 표정, 얼이 나간 영혼으로

나들 돌아봐 달라고 외치는

간절한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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