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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사 작사가 류익 Jan 05. 2024

#3. 예기 불안(豫期不安)이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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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이따금씩 예기불안(豫期不安)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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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불안이란 공황발작의 전조증상으로, 공황발작이 갑자기 찾아오지 않을까 초조해지며 불안에 떠는 증상이다. 예기불안이 찾아올 때면 나는 길을 걷다가도 문득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확인하며 심호흡을 깊게 내뱉어 본다. 이내 불안감은 가시지만 언제 이 불안함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에 나는 참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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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건강하고 발랄했던 나에게 이러한 증상은 아주 사소하면서 커다란 것으로부터 찾아왔다. 내게는 참 평범했던 하루였다. 우연한 기회가 닿아 나의 해외 경험을 담은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그 책의 원고를 작성하러 한적한 평일 오전에 조용한 커피 가게로 향했다. 옛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보며 한 시간가량 원고를 쓰고 있는데, 평일 낮에는 도통 전화를 않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한 통이 왔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며 한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오라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병 하나 없이 오늘 아침까지도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갑자기 쓰러지셨다니. 약간은 당황했지만 이내 만나면 잘 도닥여 드릴 작정으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기차가 들어오는 시각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기차에 올라탄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난 후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되었다. 일단 세상이라는 것은 참 황망하고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맨 처음으로 들었고, 인간관계의 역학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장례가 끝나고 난 후 나를 만난 모든 이가 강조하는 것이 꼭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누구보다 가장 힘드실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라는 것이었다. 모든 이가 입을 모아 그렇게 이야기하기에 나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렸던 것 같다. 어머니나 나나 황망한 마음은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모든 정성을 어머니께 쏟았고,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다다랐던 순간 나는 대학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캠퍼스 앞거리에서 거의 쓰러지는 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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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죽음을 염두 해본 적 없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극심한 죽음의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아버지처럼 갑자기 심장이 멈추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남겨진 어머니와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며 극도의 공포감이 찾아왔고 이내 호흡이 힘들어지며 정신을 놓으면 완전히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공포를 맛보았다. 내가 느낀 그것은 현대인들에게 자주 찾아온다는 공황발작이었다. 한 번 공황을 맛본 이후 나는 두발로 똑바로 서있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언제나 갑자기 심장이 멈추며 쓰러질 것만 같았기에 항상 벽을 짚고선 서 있어야 했다. 희망으로 가득 찼던 삶의 의미도 퇴색되었고, 하염없이 침대에 누워 깊고 끝없는 심연으로 그저 빠져들길 바랐다.

 

 그래도 젊음은 참 좋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신체는 건강했고 활력은 넘쳤다. 문득 이렇게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 앞에서 공황발작을 극복한 이들의 영상을 끊임없이 찾아보았고,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철학에 더욱 몰두하였다. 현대 의학과 내가 내린 결론은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도 결국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며 1500년의 세월을 건너 원효대사 님이 내 귓가에 속삭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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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까지도 내게는 예기불안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심호흡을 한 번 내뱉곤 이 불안 역시도 내 마음 속에 오는 것이겠지 하며 넘겨버리는 연습을 오늘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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