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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물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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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길 유아 시절에도 결코 장난감이나 갖고 싶은 물건을 사 달라고 졸랐던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매년 크리스마스 때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잠에 빠져들기도 했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무엇을 주실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께서는 곧잘 사탕이나 젤리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셨지만 그걸로 족했습니다.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원하는 것이 거의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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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에게도 꼭 가지고 싶은 물건이 한 가지 생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였습니다. 딱히 누군가와 연락할 일은 없었지만 친구들이 휴대전화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나눌 때 저는 참 샘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사달라고 했을 때 쉬이 허락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휴대전화는 몇 살에 사 주어야 자제력을 키울 수 있다.'라는 부모님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 몇 달을 부모님 앞에서 토라진 채를 하거나 응석을 부린 끝에 결국 부모님께서는 제게 핸드폰을 하나 쥐어주셨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딱히 연락을 나눌 사람이 있지는 않았기에 그저 휴대용 오락기 정도로 휴대전화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욕이 없는 성향은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쉬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주변의 친구들은 자동차나 시계 같은 값비싼 물건부터 시작해서 각종 물건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거나 수집을 하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당최 저는 그런 욕구나 열망이 생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다 관심을 가져본다는 사진기나 음향기기를 구매해 보기도 했었지만,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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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어느 순간부터 억척스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물욕이 없기도 하거니와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참 아깝게 느끼는 사람인 듯합니다. 이발하는 비용이 아까워서 앞머리가 콧방울까지 내려 올만큼 더벅머리로 생활하거나, 학교를 졸업 후 옷장에 오랜 기간 보관해 놓은 중학교 교복을, 한때 근무복으로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무엇을 사거나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재산을 사용하는 게 아깝게만 느껴졌던 것입니다. 소비하는 것에 재능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감각이 떨어져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이 지나도록 저는 꼭 한 가지의 옷차림을 고수하였고, 그로 인해 저는 어떤 모습이 제게 곧잘 어울리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의 옷차림을 꽤 오랜 시간 고수하다 보니 다른 옷차림을 입어 보는 것도 지레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 옷들 마저도 매년 돌려서 입다 보니, 가지고 있는 옷도 몇 벌 없습니다. 가끔은 저 자신이 참 억척스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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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선으로는 참으로 건실하다고 보아줄 수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참 좋은 습관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욕심이 없으니 취미를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점입니다. 저도 여느 사람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밥벌이를 하게 될 것인데 그 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건실하게 해결하고 싶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며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행동에 대한 욕심도 생길 것인데, 저에겐 그 창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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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꼭 계속 가지고 가고픈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살며 여태 받아온 선물과 편지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써왔던 일기장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손에 지니고 싶습니다. 집에 불이 나게 된다면 저는 아마 제 추억이 담긴 물품부터 가득 챙길 것입니다. 저는 단지 물욕이 없을 뿐 순간을 나누었던 추억에 대한 소유욕은 가득한가 봅니다.
더 돈을 쓰고, 더 재화를 사용하다 보면 제게 맞는 취미나 흥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쓸 것인가, 아낄 것인가를 한참이나 고민하며 저는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