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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완전한 반골기질(反骨氣質)의 사나이였습니다. 반골이란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따르지 아니하고 저항하는 기골을 뜻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것보다 소수의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예컨대 소설을 읽는데도 힘없는 이가 용감히 권력에 맞서는 장면을 좋아했고, 그가 승리를 쟁취할 때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소수가 추구하거나, 다수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가령 저에게 만약 어떤 언어를 완벽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이들이 구사할 수 있는 영어 / 일본어 / 중국어를 선택하기보다는 외딴곳에 떨어진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어나 인도의 힌디어를 배우는 것이 더 좋고 더 재미있겠다고 느껴지기에 그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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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는 왜 소수가 좋았을까요. 지금 와서 추측해 보건대 소수가 되면 예외로 용인되는 것이 많았고, 그것이 제게는 너무 달콤했었기 때문이었는 듯합니다. 예컨대 제가 학교에서 어딘가를 다쳐 환자가 된다면 다른 이들과는 달리 학교 수업을 뒤로한 채 저 혼자 병원을 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었고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했을 평일 오전의 느긋한 자유를 맛볼 수 있었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예외가 되면 다른 이들이 맛볼 수 없는 무언가를 혼자 누릴 수 있다는 쾌감이 참 좋다고 느꼈던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예외가 되면 상대적으로 많은 것들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꽤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깨달았었나 봅니다. 저는 어디를 가던 예외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이 생각이 결국은 너 자신만 생각하는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로 변질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이가 아무것도 몰랐던 초등 / 중학교 시절에는 이러한 성향이 별문제가 없었는데 본격적인 부작용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만 16세가 된 시점부터 근 100명가량의 동기들과 난생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그러하였듯 예외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주 추운 날 기숙사 밖에서 아침 체조를 하는 날이라면 저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침대에 남아있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또 한 가지로, 야간 자율학습 중간 쉬는 시간에 아무도 없는 교사용 휴게실을 가면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서 종종 시간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그런 달콤함을 알게 될수록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묵과하고 그저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저를 공동체에서는 슬슬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외려 모든 이가 제 주변에 머물기를 기피했습니다. 어떤 이와 교우관계를 맺는다고 한들, 그 관계 속에서도 저는 예외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공동체의 끝에만 걸쳐져 있을 뿐 무리의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왜 저의 처지가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이가 해답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제게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배척받고 난 이후였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문제의 해답을 역시나 독특하게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기존의 공동체를 내버리고 그저 새로운 공동체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났습니다. 새로이 찾아갔던 대부분의 공동체는 저를 반겨주는 듯하였으나 곧 모두 제게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며 제게 꼭 맞는 공동체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중한 고교 시절, 내게 꼭 맞는 교우는 누구일까 따위의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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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대한 해답은 굉장히 의외에 곳에서 급작스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입학과 거의 동시에 바로 병역을 하러 군대로 갔는데 거기서 만난 전우들이 일전의 저와 비슷한 성향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꼭 해야 할 작업이 산더미인 그 공동체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일신만을 생각하는 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하게 되면서 저의 지난 시절 과오를 단숨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제가 추구했던 것은 반골이 아닌 그저 이기심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맺은 저의 모든 관계가 원만했다고는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관계 형성 방법에 있어서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나 밉고 싫었던 그 조직에서도 앞으로 평생 안고 갈 선물을 하나 받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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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아직까지는 관계에 관하여 골머리를 앓은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나 하나만'이라는 문장을 머리에서 던져버리니 많은 행복이 찾아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