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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Mar 31. 2020

대기업 월급쟁이 되려고 지랄하지 마

도올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사랑하지 말자>는 도올 김용옥이 젊은이들에게 쓴 철학서이다. 도올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설파한다. 후기에 밝혔듯이 도올은 독자를 생각해서 쉽게 쓰려 노력했다. 노력은 했지만,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제5장 '우주'와 제6장 '천지'는 특히 어렵다.


학동: 우주란 무엇입니까?
도올: 나는 우주를 잘 알지 못한다.


우주 파트의 첫 번째 대화이다. 우주를 모른다는 사람이 우주에 대해, 6장 '천지'까지 포함하면 100페이지나 넘게 쓰셨다. 모르는 사람의 설명 때문인지, 독자는 책을 읽을수록 우주를 더 모르게 되거나, 더 이상 우주를 알고 싶지 않게 된다. 나는 '기가 승하면 리가 발한다'는 부분에서 책을 잠시 덮었다. 우주는 역시 칼 세이건이다. 도올의 우주는 어렵고 잠이 온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이 아니라면 '우주'와 '천지'는 건너뛰어도 좋다.


책은 2012년에 나왔다. 안철수의 인기가 50%를 육박하던 시절이다. 시의성이 있다. 특히 제4장의 '대선'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본다면 지금 읽어도 꽤 유용하다. 도올은 '안철수 현상'을 천심으로 규정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 정치가 그 천심을 담아내지 못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우리들 이면에, 자본을 향한 천박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일깨워준다.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다시 회복하고 현실화시키느냐가 우리의 과제가 아닐지.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 역사, 조국, 대선,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순이다. 구성은 가상의 학동과 도올이 문답하는 형식이다.


<사랑하지 말자>의 밑바탕에 깔린 도올의 사상은 서구라파의 사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우리는 서구의 잘못된 사상에 너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양이 가진 철학적 성찰을 하찮고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서구의 사상을 위대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사대를 타파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서양 철학은 스스로 만든 '신'을 죽이느라 수천 년 동안 지랄한 사상으로 규정한다. 미국 대통령은 아직도 성경책에 손을 얹고 취임을 한다. 동양은 이미 주나라 시절, 신 중심의 왕조를 인간 중심의 질서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공자도 인간 스스로의 가능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신에게 비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학 역시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라 주장했다. 하느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해야 할 곳은 우주 밖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개개인의 역사 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도올을 통해 깨닫게 된다.


도올은 영화 <더 스토닝>과 <고양의 유령>을 강추한다. 신의 민낯을 이해하는 데 좋은 영화이다. 기독교가 역사 밖에서 천당을 추구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역사의 잔혹함을 엿볼 수 있다. 서구라파가 지향하는 이데아의 구현은 결국 타노스(영화 <어벤저스>의 등장인물, 우주 평화를 위해 우주 인구의 절반을 죽이려 한다)의 인간 학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서구의 사상 역시 비판한다. 고대에는 노예제이고 중세에는 봉건제, 근대에는 자본제였다가, 최후에는 공산제로 진보한다는 역사 진보론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두 천박한 서양의 시화적 가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시대의 우연적 산물이 만들어낸 가치들의 총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이 그러하듯, 역사의 목표 역시 역사 밖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양의 오만한 진보론적 역사와 철학이 이 인류사에 저지른 만행은 얼마나 추악한지. 전 세계가 이상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진보론적 세계관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정당화시켜줬는가. 도올은 과학기술의 발달도, 삶의 양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미개고 우리는 문명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보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서양이 제3국에 저지른 만행을 용인하게 되는 꼴이 된다. 일제의 만행은 철길 놓아준 고마움으로 승화되고, 독재 시절 경제 부흥은 독재에 맞서다 죽은 모든 이들을 개죽음으로 만든다.


도올은 서양이 말하는 '이데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허상에 불과한지 통렬히 비판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고찰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역사, 종교, 대선과 사랑, 그리고 음식에 대한 편견을 벗겨준다. 사대를 버리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 내재된 사상과 힘을 믿으라고 설파한다.


도올은 청춘에게 고한다.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청춘은 모험이라며, 모험을 멈추는 순간 청춘은 비극의 해탈로 끝날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오늘날의 모든 청춘들에게 역사의 영웅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청춘은 쪼들리는 것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등록금,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 취직 등, 먹고사는 문제의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리비도 때문에 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신화를 창조하려는 충동 때문에 꼴리는 것이라 한다. 꼴리는 꿈을 꾸라고 권한다. '신', '대기업', '돈', '아파트'는 일반명사라며, 일반명사는 보편자의 허구성을 지닌 것이라 한다. 그러나 꿈은 명사가 아닌 행위의 과정이라고 한다. 도올의 이 주장은 <사랑하지 말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이 문장을 이해한다면 책의 90%는 이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대기업 월급쟁이 되려고 지랄하지 말'라는 도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철학자, 도올. 대중과 소통하는 도올의 <사랑하지 말자>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으로 죽는 순간까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스러져간 전태일(1948~1970)의 무아적 행위 속에서 "예수 사건"을 감지했다. 예수는 대상화되어서는 아니 되며 오직 나의 실존 속에서 십자가 사건으로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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