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사에서 휴식, 라구사와 모디카
2017년 5월 4일
오늘은 자전거를 쉬는 날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중간에 쉬는 일정을 조금씩 만들어 놓는다. 여행에서 만일의 사태로 일정이 늦어질 경우, 이런 여유 일정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루 쉬는 곳에서 자전거로 하기 힘든 관광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으니 오늘은 숙소에 자전거를 두고 관광을 하러 나온다.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겠다. 숙소 바로 앞이 시장인데 오전만 열리는 듯하다. 시장에 시칠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다양한 농산물과 수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이다. 시장이 닫힌 오후에 지나갈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구질구질한 넓은 골목길이었는데 아침에는 이렇게 멋진 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샌드위치 파는 가게는 없고 시장 입구에 카페만 하나 있다.
가만 보니 카페 옆의 두부집 비슷하게 생긴 치즈와 햄을 파는 가게가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이다. 햄과 치즈를 파는 가게인 만큼 좋은 햄과 치즈로 속을 꽉 채운 샌드위치를 만든다.
이 사람이 이 가게의 샌드위치맨이다. 속이 꽉찬 샌드위치가 보인다.
샌드위치와 마실 커피를 주문했더니 커피는 옆의 카페에서 가져온다. 협업 체제인가보다.
샌드위치 두 개를 주문했더니 큰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눠서 4개를 가져온다. 반 개만 해도 어지간한 샌드위치보다 훨씬 큰데 2개는 양이 너무 많다...
치즈와 야채와 햄이 가득 들어있는, 속이 빵보다 많은 샌드위치다. 빵을 주로 먹는 서양 사람들이 최고의 샌드위치라고 인터넷에 극찬을 해놨던데 맛이 있긴 해도 그렇게까지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냥 밥을 먹다가 잘 지은 가마솥 햇쌀밥을 먹고 엄청 맛있다고 느끼는 그런 차이인 듯하다. 지니님은 반 개도 간신히 먹었는데 나는 결국 그 큰 샌드위치를 모두 먹었다. 많이 먹지 않는 사람은 샌드위치를 반 개만 먹어도 충분할 듯하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지 않는 대신 차를 빌려서 라구사와 모디카를 다녀오기로 한다. 렌트카 업체는 시내에 있다. 오르티지아섬에서 빠져나와서 시내로 걸어간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어제 저녁에 예약을 했더니 차량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1종 보통 면허를 가지고 있지만 운전하기 익숙하고 편한 오토 차를 빌리려고 국제 운전면허증을 오토로 발급받아 왔더니 오토 차량 빌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예정된 관광을 해보려고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봤더니 시간표도 모르겠고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버스 정류장 중에 정확히 어디에서 버스를 타는지도 모르겠다.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봤더니 1시간 반은 기다려야 오는 듯하다. 그냥 포기하고 오르티지아섬이나 둘러보려고 다시 돌아가다가 다른 렌트카 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보험 포함해서 42유로 짜리 오토매틱 차량이 있다고 한다. 아까 업체는 오토 차량이 벤츠 C클 밖에 없어서 140 유로나 주고 렌트를 하려했는데도 못 빌렸더니 훨씬 저렴하다.
잠시 후, 빌린 차량이 왔다. 새차 냄새가 솔솔 나는 벤츠 스마트다. 2인승의 아주 작은 차지만 생각보다 실내가 넉넉하고 필요한 기능은 다 달렸다. 그리고, 차가 작은 만큼 이탈리아의 좁은 옛날 도시 뒷골목을 달리기에 아주 편하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라구사에 도착했다. 라구사 가는 길은 정말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며칠 전에 젤라에서 나올 때 SS115번 국도를 잠깐 따라가다가 벗어나 해안도로로 달렸는데 그 SS115번 도로가 내륙으로 들어와서 라구사를 거쳐 간다. 한참을 올라가는 오르막길인데 힘겹게 올라가는 자전거꾼들이 종종 보인다. 우린 이 길로 오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라구사 신시가지 변두리의 넉넉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시내 구경을 한다. 라구사 신시가지는 그냥 언덕이 많은 산동네이다. 라구사의 신시가지는 가운데에 계곡이 있다. 계곡 맨 위쪽에 공원이 있는데 마침 시내 안내판이 있다. 이탈리아 도시 여행의 기본은 대성당을 찾는 것이다. 어지간한 것은 대성당 근처에 다 있다.
차를 너무 외곽에 주차해두었나? 한참을 걸어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이것이 라구사의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성당 (Cattedrale di San Giovanni Battista)이다.
성당 근처의 바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쉰다. 가게의 아줌마는 쿨 시크하면서도 친절함이 넘쳤다.
이제 라구사에 온 목적이자 라구사의 구시가지인 라구사 이블라를 찾아간다.
이곳이 라구사 이블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산 꼭대기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말 그대로 육지 속의 섬같다. 옆에 보이는 도로만 해도 엄청 구불구불하다. 이 도로는 동네 샛길도 아니고 SS115번 국도다.
이제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간다. 언덕 꼭대기의 한가한 변두리 주차장에 세웠더니 너무 많이 걸어야 한다. 아침에 먹은 거대한 샌드위치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지쳤을 것 같다. 이래서 아침은 든든히 먹어야해... 차로 돌아가는 길에 신시가지를 둘로 나누는 계곡과 다리가 잘 보인다.
라구사에서 직선거리로는 7 km 정도 떨어진 모디카로 갔다. 직선거리로는 7 km 지만 길이 꼬불꼬불해서 10여 km를 달려야 한다. 좁디 좁은 모디카 시내지만 차가 작으니 요리조리 빠져나가기가 정말 좋다. 도로 가의 공영 주차칸은 1시 좀 넘어서부터 4시까지는 무료주차이니 빈 곳을 찾아서 차를 세워둔다. 무료 주차 시간대가 아니면 반드시 주차권을 구입해 놓는 것이 좋다.
골목길을 지나서 내려가니 성당 옆으로 나왔다.
모디카는 쵸콜렛으로 유명하다. 마침 성당 옆에 쵸콜렛 바가 있어서 들어가본다. 이름도 Bar del Duomo (성당의 바)이다.
나는 쇼콜라 그라나타, 지니님은 핫쵸코를 주문했다. 진한 쵸콜렛 맛이 좋다.
모디카는 전통 쵸콜렛 제조 방법의 쵸콜렛으로 유명하다. 시음용의 쵸콜렛 조각을 함께 준다. 쵸콜렛을 녹여서 굳힌 것이 아니라 갈아서 분말을 틀에 넣어 굳힌 것이다.
모디카의 산 지오반니 대성당(Cathedral of San Giorgio)이다. 앞에서 보면 웅장하고 멋진데 바에 앉아서 보는 뒷 모습은 뭔가 볼품이 없다.
대성당 앞에는 수 십년 째 젤라또를 파는 젤라또 트럭이 있다. 아직 날이 충분히 덥지 않아서 그런지 영 손님이 없어 보인다.
대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모디카는... 달동네같다.
이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세계 최대의 성당이 될 예정이지만 아직 미완성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외관은 화려할지 모르지만 성당 내부의 화려함은 이런 옛날 성당들이 더 대단한 듯하다.
지니님이 1유로를 기부함에 넣고서는 양초를 하나 집었는데 하필이면 심지가 없는 불량이다.
이제 다시 골목길을 올라 차로 돌아와서 모디카의 쵸콜렛을 먹으러 간다.
모디카도 꽤나 큰 도시다. 성당에서 구불구불 내려왔더니 사람들로 복잡한 시내가 이어진다.
카르미네 교회(Chiesa del Carmine) 앞의 빈 주차 공간에 차를 세우고 근처 담배 가게에서 주차권을 구입한다. 주차권의 년도 날짜와 주차 시간을 표시해서 잘 보이도록 대시보드 위에 놓아두면 준비 완료다. 몇 시간 씩 주차한다면 시간에 맞춰서 여러 장을 사면 된다.
이제 시내 구경을 하면서 슬슬 걸어다닌다. 언덕 위에는 콘티 성(Castello dei Conti)이 보인다.
모디카 쵸콜렛 가게 중에 가장 유명한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쵸콜렛 박물관이 있다. 1인당 2유로를 내고 별 기대는 안 하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만 영어 설명이 조금 되어 있다. 영어 설명이라도 읽으니 모디카 쵸콜렛의 기원이나 만드는 방식이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박물관보다 볼 것이 적었다. 쵸콜렛으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우리가 원하던 모디카 쵸콜렛에 관한 역사나 만드는 방식에 대한 알기 쉽게 시각화해 놓은 자료는 거의 없었다.
가장 큰 방에는 이탈리아 전체를 쵸콜렛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있다. 생각보다 허접하긴 했지만 준비된 자료들은 충분히 읽었다.
산 피에트로 교회(Chiesa di San Pietro) 건너편 골목에 우리가 가려했던 쵸콜렛 가게가 있다.
가게 안에는 쵸콜렛을 시식할 수 있는 샘플들이 쭉 있다. 매운 후추맛 쵸콜렛이 유명하다는데 지니님은 좋아하고 내 입맛엔 안 맞는다.
지니님은 2 피스의 작은 매운 후추 쵸콜렛을, 나는 가장 무난한 70% 카카오 쵸콜렛을 구입한다. 나중에 입이 심심할 때 먹어야지...
이제 라구사와 모디카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으니 다시 시라쿠사로 돌아와서 랜터카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어제 저녁에 눈여겨 봐둔 오르티지아섬 서쪽의 해변 식당가로 간다.
바다가 아름다운 곳은 일몰도 아름답다.
어제 봐둔 식당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일몰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점점 어두워지는 경치를 감상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지니님이 자주 주문하는 해산물 스파게티, 만두 비슷해서 내가 좋아하는 라비올리, 그리고 해산물 모듬이다.
사실 젤라에서 출발할 때, 마리나 디 라구사, 마리나 디 모디카, 리도 디 노토를 지나간 만큼 시라쿠사보다 젤라나 노토에서 라구사나 모디카가 훨씬 더 가깝다. 그러니, 젤라에서 차량을 렌트를 해서 다녀오는 것이 더 가깝고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풍경이 멋진 만큼 자동차로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시라쿠사에서의 일정은 끝났다. 다음 도시인 카타니아까지는 약 80여 km 정도니 느긋하게 달려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