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발부터 LA의 남쪽 시내를 관통한다. 내 다리가 정상이라면 샌디에고까지 남은 총 240 km를 이틀 동안 달리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힘들 것 같다. 다리를 혹사하지 않기 위해서 80여 km씩 세 번에 나누어 달리기로 했다. 이로 인해 하루를 더 달려야 하니 샌디에고에서 하루 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평이 좋은 호텔답게 아침 부페도 괜찮았다. 호텔의 부페식 아침 식사에 익숙해지면 하루 자전거 타는데 필요한 열량의 상당 부분을 아침식사로 채우게 되는 것 같다. 이 정도를 밖에서 따로 사먹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한다. 해변으로 가면 빙 돌아가는 셈이니 린우드까지 시내를 관통해서 로스엔젤레스강의 자전거길을 따라가기로 한다.
출발하려고 보니 내 자전거 뒷바퀴에 펑크가 나있었다. 바로 펑크를 때우고 CO2 카트리지를 하나 써서 공기를 채운다. 이렇게 실펑크가 나게 되면 다음 날 출발할 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LA 시내를 가로지른다. 가는 길은 순전히 지니님의 선택에 맡겼는데 지도를 보면서 요리조리 잘 빠져 나간다.
큰 공장과 공군부대로 막힌 블럭을 피해 웨스트 135번가를 달리면 마지막 삼거리에 커피 가게가 있다. 135번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니 좌회전-우회전해서 다시 135번가를 따라 간다.
노스 센트럴 애비뉴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서...
아론드라 대로(Alondra blvd)를 따라 콤프턴 우들리 공항 앞을 지나 로스엔젤레스 강을 건너면 강변 자전거길로 들어가기 쉬운 통로가 나타난다.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로스엔젤레스 강은 완전히 인공적인 수로 느낌이라 그리 재미는 없는 구간이다. 외국에는 의외로 크고 넓은 강이 드물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강을 보며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평지 구간이긴 하지만 다리를 만날 때마다 자전거길이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올라온다. 마냥 평지는 아닌 셈이다. 이 잠깐잠깐의 내리막과 오르막 때문에 근육통이 다시 심해지려 한다. 내 페이스대로 맞춰 최대한 내리막에서 가속해서 언덕을 치고 올라간다.
특이하게 생긴 이런 다리같은 구조물들은 모두 통행 금지다.
바다와 가까워지는 최하류로 내려갈수록 강 가에 수풀이 많아지면서 조금은 강 같아보이게 된다.
이 강변 자전거길은 롱비치에서 바다와 만난다. 이제부터는 해변 자전거길이다.
항구가 끝나고 백사장이 나오면 산타모니카와 비슷한 해변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산타모니카만큼 복잡하고 사람이 많지는않다.
앞바다에는 몇몇 섬들이 있는데 모두 석유 관련의 공업 시설들이 있다.
이름이 롱비치라 얼마나 길까 기대했는데 4km 조금 더 된다. 우리나라의 백사장과 비교하면 큰 규모라 할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리 긴 해변은 아니다.
네이플스를 넘어서부터는 1번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선셋비치부터는 옆의 한가한 마을 도로로 빠질 수 있는데...
마을 출구 직전에 또 펑크가 났다. 날카로운 무언가를 밟아서 타이어가 찢어진 것을 적당히 응급처치했다.
두 번이나 펑크가 나니 힘도 빠진다. 마침 점심시간이니 뭐라도 좀 먹으려 패스트푸드점에 들른다.
햄버거나 먹어야 하나.. 했는데 스테이크 덮밥 같은걸 판다. 난 브로콜리를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빵보단 나은 듯하다.
햄버거를 생각했는데 밥을 먹으니 좋다. 다시 출발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헌팅턴 비치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는 백사장이 끝나면 자전거길이 조금 좁아진다. 이 해변 자전거길이 입구에서부터 15 km 정도 이어진다.
멀리 바다 위에는 석유 시추선들이 군데군데 떠있다.
헌팅턴 비치 피어를 지나서 계속 달리는데 지니님 자전거의 타이어에 무언가가 붙은 것이 보였다. 반짝거리는 것이 타이어에 붙어서 소음을 낸다.
천천히 멈춰서 살펴보니 타이어에 옷핀이 박혀있다. 하필이면 뾰족한 핀을 누가 자전거길에 버려놨다. 자전거에겐 아주 치명적인 물건이다.
내 타이어 두 번, 지니님 타이어 1번... 지금까지 잘 달리다가 오늘 하루에 줄지어 펑크에 시달린다. 3개 세트로 사면서 너무 많이 사는게 아닐까 싶었던 CO2 카트리지가 이제 하나 남았다. 비상용으로 하나는 남기고 싶은데 근처에 마침 자전거 렌탈샵이 있다. 바퀴만 들고가서 펌프를 좀 쓴다고 하니 흔쾌히 빌려준다.
하루 세 번 펑크라니... 소비한 시간도 상당하고 체력과 정신 소모도 심해진다. 오늘은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아서 다행이다.
뉴포트부터는 1번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1번 도로로 달리게 되는데, 이를 따르지 않고 해변으로 빠져서 계속 달리면 발보아에서 다리가 없어 끊기게 된다.
LA 권역을 벗어나니 마을도 있고 긴 해변도 있는 전체적으로 한적하고 무난한 경로다. 간간히 짧은 오르막이 나타날 때마다 힘겹기는 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라구나비치 경계를 넘어왔다. 이제 다 와간다.
그런데 이 동네는 이름은 해변 마을인데 오르락 내리락 낙타등 언덕이 있는 산동네 같은 길이 반복된다. 보통 바닷가 마을들은 언덕을 피해서 평지를 따라 도로를 내는데 이건 언덕에 길을 그냥 만들어놓고 거기에 마을이 생긴 듯한 느낌이다.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큼직한 리트리버가 사는 곳이다. 이 개가 순하기는 한데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엄청 짖는 시끄러운 녀석이다.
방과 화장실이 조금 좁은 느낌인데 미국의 비만인들은 묵기 힘들 것 같다. 어쨌든 자전거를 들여놓을 공간은 되니 다행이다.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근처에 식당이 없다. 라구나 비치는 언덕이 많은데도 관광객을 조금이라도 더 유치해볼 생각인지 마을에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 시간표를 모르니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식당을 찾아 슬슬 걸어가는 사이에 셔틀버스가 두 대 지나간다. 걷다가 적당한 식당에 들어간다. 조명이 어둡긴 한데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보인다.
타히티 맥주를 시켜서 한 잔 한다. 타히티가 여기서 가까운 섬은 아닌데 멀리서 온 맥주네...
라비올리를 겯들인 스테이크와 바라문디라는 생선살에 야채가 많은 생선요리로 저녁을 먹는다. 양과 맛에 비해 가격대가 조금 높은 집이다. 나는 스테이크 위에 뿌려진 텁텁한 소스 때문에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지니님은 바라문디 요리가 아주 맘에 들었다고 한다.
적당히 먹고 숙소 근처로 다시 돌아온다. 해가 완전히 지고나니 바닷가에 나가봐도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아직 근육통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오늘과 내일은 무리하지 않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