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지니의 미국 서부 해안 자전거 여행 13

LA에서 비행기를 놓치다.

by 존과 지니

2018년 10월 6일


2박 3일 동안 그랜드 캐년을 둘러보고 다시 LA로 돌아왔다. 여기 한인 민박은 라면, 시리얼, 콜라가 제공되니 좋다. 아침으로 간단히 시리얼을 먹는다.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전거 박스를 구해서 자전거를 포장하는 것이다. 가까운 곳부터 차례대로 자전거 가게에 박스를 찾아 다니는데 죄다 박스가 없다고 한다. 다행히 숙소에서 꽤 떨어진 중국 사람이 하는 자전거 가게에서 박스 두 개를 5 달러에 구했다. 미국치고는 엄청 저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자전거 가게에 부탁하면 구할 수 있지만 미국은 자전거 박스도 돈을 받고 판다. 중형 SUV의 뒷좌석을 접으면 자전거박스가 넉넉하게 들어간다.


일단 자전거 박스는 숙소에 두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민박집 여기저기에 고양이들이 사는데 길고양이들인지 낯선 사람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늘 점심은 LA에서 유명한 보일링 크랩이라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이름 그대로 게나 새우 같은 해산물들을 파는 곳이다.


아직 식당이 오픈 전인데도 기다리는 사람이 꽤 있다. 개점 시간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점점 몰린다.


나름대로 빠른 순서로 가게에 들어와 앉았다. 문 열자마자 마구 들어가서 맘대로 앉는 것이 아니라 홀에서 주문을 소화할 수 있도록 천천히 들여보낸다. 일찍 먹을 수 있게 킹크랩과 새우를 빠르게 주문한다.


이 식당의 모토는 세상에서 제일 더럽게 먹는 식사라고 한다. 분홍 비닐봉지는 턱받이 같은 것이다. 하얀 식탁 종이에 주문한 것을 쫙 깔아놓고 맨손으로 주워먹으면 된다고 한다. 사실 게 먹는게 다 그렇지 뭐...


게살을 발라먹기 위한 도구들도 세팅해준다. 뿌려먹으라고 라임도 주는데 난 신맛을 싫어하니 필요없다.


옥수수와 새우가 먼저 나왔다. 옥수수는 이 집의 특제 양념이고 새우는 갈릭버터 양념이다. 새우 1 kg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데 새우 자체도 그리 크지 않다. 새우만 먹고 가면 실망만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곧 킹크랩이 나왔다. 다리 4개니까 반 마리 정도 되는데 큼직하고 살이 꽉 차있다.


먼저 먹고 있던 새우가 초라해보인다. 맛도 새우보다 훨씬 맛있긴 한데 겉에 발라진 특제 양념은 내 입맛에는 안 맞는다. 뭉친 라면스프 같은 느낌인데 호불호가 강한 것 같다.


미국의 음식점들은 그리 싸지 않은데 팁까지 줘야해서 더욱 비싸진다. 킹크랩이 우리나라에서는 더 비싸니 그래도 저렴한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대형 마트에 들른다. 자전거 포장에 쓸 스카치 테이프와 뽁뽁이 비닐이 필요한데 생각보다 많이 비싸다. 그래도 자전거를 포장하려면 사야지...


자전거 박스와 테이프, 뾱뾱이 비닐도 샀으니 준비 완료. 숙소로 돌아가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자전거 포장을 무사히 마쳤다. 해외 자전거 여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해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해외에서 자전거 포장하기'는 다른 글로 정리한다.

https://brunch.co.kr/@skumac/332




숙소 주차장 구석에 헐리우드 기념판이 놓여있다. LA가 그리 할거 없는 동네라 산 위에 세운 헐리우드 입간판을 구경간다고 하던데 우리는 이걸로 때우자.


자전거 포장을 마쳤으니 잠깐 낮잠을 자고 저녁거리를 사올 겸해서 외출한다. 먼저, 산타모니카 가는 길에 있는 와인샵에서 와인을 사기로 했다.


여기는 와인 창고 같은 곳으로 저렴한 와인들은 대충 굴러다닌다. 종류가 워낙 많아서 찾기가 힘들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참 찾다가 어디론가 간다. 우리가 찾는 150달러 짜리 와인이 여기 아무렇게나 굴러다닐리가 없지...


이제 와인 안주가 필요하다. 시내 쇼핑센터 푸드코트에서 바베큐 믹스 박스를 하나 사고, 근처 포케 샵에서 포케도 하나 사기로 한다. 포케샵 앞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 높은 곳에 밝은 불빛을 쏘는 무언가가 있다. UFO가 나타났다고 난리인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민간 우주 기업으로 유명한 스페이스X에서 로켓 발사 착륙 실험을 한 것이라고 한다.


하늘에 UFO가 있든 미사일이 날아가든 로켓이 폭발하든 우린 먹을게 더 중요하다. 하와이에서 맛있게 먹었던 포케를 오랜만에 다시 먹으려니 즐겁다.


여기는 참치 포케 외에도 연어 포케도 있는데 야채를 많이 담고 포케가 적은 것이 순수한 포케라기보단 포케 샐러드같은 느낌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한 스쿱 단위로 주는데 생선을 많이 먹고 싶으니 참치와 연어로만 4스쿱 주문한다. 야채 샐러드 위에 생선살이 적당히 올라간다.


숙소로 돌아와서 오늘 사온 것들로 저녁 식사를 한다. 초 호화판이다.

먼저 와인샵에서 사온 프란체티 2014년산,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서 마셨던 슈퍼 에트나 와인이다.


아울렛 푸드코트에서 사온 바베큐 믹스와 포케 샐러드를 펼치니 푸짐해보인다. 바베큐 믹스에 LA 갈비가 들어있다. 역시 LA에서는 LA 갈비인가. LA 갈비의 유래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와인 한 병에 소, 돼지, 닭, 참치, 연어, 샐러드까지 푸짐하게 먹고 잔다.



2018년 10월 7일

비행기 타러 가야 하는 아침이다. 공항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 숙소에서 시간 넉넉하게 출발한다.


어... 음... 공항 근처부터 차가 엄청나게 막힌다. 공항에 자전거 박스를 내려 지니님이 지키게 하고 공항 외부의 렌터카 업체에 반납하니 시간이 빠듯하다.


생각보다 훨씬 차가 막혀 가뜩이나 늦었는데 체크인하러 갔더니 국제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잘못 온 것이다.


결국 국제선 카운터로 갔더니 이미 체크인이 마감되었다. 마침 나오는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대기했다가 빈 자리에 타야 한다고 한다.


다음 비행기는 저녁 늦게 있으니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어제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도 왔는데 이 사람들은 늦장부리다가 우리가 놓친 비행기를 못 탔다. 우리가 못 탄 좋은 자리에 타면 되었을 것을... 우리보다 더 정신 빠진 사람들이다.


공항에서 10시간을 기다렸다. 아래 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먹으면서 장장 10시간을 때운다. 드디어, 저녁 비행기가 체크인 마감 직전에 발권을 한다. 우리는 놓친 비행기와 같은 날이라 추가 요금 없이 처리되고, 어제 놓친 사람들은 수수료가 추가된다. 지니님과 떨어져서 앉게 되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지니님은 운 좋게 넓은 자리를 배정받고, 나는 창쪽에는 산만한 아줌마, 복도 쪽에는 틱장애가 있는 아저씨 사이에 끼어서 12시간을 시달린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항공권을 예약했다. 내년에도 존과 지니의 세계 자전거 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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