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추석 연휴, 존은 알프스로 자전거 여행을 간다. 지니님은 직장일로 바빠서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떠난다.
지금까지는 주로 바닷가를 따라서 자전거 여행을 했지만 이번에는 산으로 떠난다. 유럽의 산이라 한다면 당연히 알프스다. 알프스라 하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알프스 산맥은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의 여러 나라에 걸쳐 있고 그중에서도 거의 30% 가까운 면적이 오스트리아에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출발하여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횡단하고 율리안 알프스로 빠져나와 슬로베니아를 거쳐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마치는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한다. 한 번의 여행으로 알프스의 절반을 횡단하는 것이다. 산맥을 횡단하는 것이니 총 1100km 정도의 거리에 해발 2000m를 넘나드는 험난한 고개들을 계속 넘어가야 하지만 한 번 가보는 것이다.
이번 루트는 스위스를 출발해서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 그리고 크로아티아에 간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쓰는데 나는 독일어를 모른다. 슬로베니아 말이나 크로아티아 말은 더더욱 모른다. 여행 끝까지 영어와 간단한 생존 단어들로 버텨야 할 것 같다. 통화도 처음 들어가는 스위스는 스위스프랑을, 자그레브는 쿠나를 쓴다. 유로만 조금 가져가고 최대한 환전하지 않고 카드를 쓰기로 한다.
크로아티아에서의 일정이 짧기 때문에 자그레브 시내의 자전거 가게들에 이메일을 보내 자전거를 포장할 박스를 부탁했고 그중 한 자전거 가게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마침 그 근처에 적당한 호텔도 있으니 예약해둔다.
자전거 여행은 도중에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기가 애매하다. 첫날 도착해서 묵을 곳, 마지막 날 떠나기 전에 묵을 곳, 중간에 2박 이상 쉬어가는 곳 등으로 확실하게 정해지는 날만 숙소를 예약해둔다. 그 날은 무조건 거기 머물러야 하니까.
자전거는 싹 정비하고 박스도 구해놓았다. 항상 나의 자전거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단골 가게인 수원 바이크빈에 감사하다.
나는 삼성동에서 가까운 송파에 살고 있으니 자전거를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에서 먼저 포장해서 보내면 편하다. 도심공항에 입점하지 않은 항공사를 이용할 때는 인천공항까지 박스와 자전거를 옮겨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자전거를 분해해서 포장하는데 스템 볼트가 별 볼트라는 것을 깜빡하고 별렌치가 없는 작은 휴대 공구를 가져왔다. 얼른 집에 가서 다시 별렌치 휴대 공구를 가져와서 자전거를 포장한다.
이제 대한항공 카운터에 가서 짐을 보내면 공항까지 몸만 가면 된다. 자전거를 차에 실어 왔으니 다시 차를 타고 집에 가서 주차해놓은 후, 전철을 이용해서 인천공항 제2 터미널까지 간다. 도심공항터미널을 이용할 때 불편한 점은 단지 주차비뿐이다. 40분 정도 주차를 하고 용무를 보는데 4000원 정도 주차비가 나오는데 그나마도 근처 다른 건물의 주차장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내 짐은 자전거 짐 외에는 옷과 자전거 가방이 전부다. 저 옷은 알프스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만원 조금 더 주고 산 것인데 정사이즈에 비해 한 치수 이상 커서 헐렁헐렁하다. 어차피 추운 지역만 통과하면 버릴 생각으로 산 것이니 교환 없이 그냥 가져간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지니님의 배웅을 받으면서 2번 출국 게이트로 갔더니... 도심공항에서 수속을 마친 사람은 옆문으로 가라고 한다. 다시 배웅을 받으며 출국 수속을 한다.
인천공항의 출국 수속은 정말 빠르다. 후다닥 마치고 출국장으로 나오면 늘 그렇듯이 마티나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메뉴 중에 꼬막비빔밥이 있다. 이제 반 달 동안 한식을 못 먹을 테니 꾸역꾸역 먹어둬야지...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으니 타러 간다. 운 좋게 내 옆 자리가 비었다. 두 자리 모두 비었었는데 이륙하고 나니 웬 중국인 노인이 와서 자리를 차지한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옆자리만 비어도 한결 편하게 갈 수 있다.
내가 제일 맛없다고 느끼는 음식은 기내식이다. 난 이 특유의 맛이 너무 싫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루텐 제한식으로 요청했더니 밀가루가 없는 식단이 나오는데 나는 익은 야채도 잘 안 먹는다.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배식받고 다른 사람들 먹는 동안 양치까지 끝낼 수 있는 것은 편하다.
옆자리가 빈 덕분인지, 환승을 하지 않는 직항이라 그런지 상당히 편하게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짐 찾는 곳 근처에 대형 수하물 찾는 곳으로 갔더니 금방 자전거 박스가 나왔다. 일단 겉면을 봐도 충격받은 흔적이 없고 열어보니 모두 무사하다.
자전거 조립 완료. 짐이 역대급으로 많다. 지니님과 분산해서 챙기던 짐을 몽땅 혼자 들고 가야 하는 데다가 기존보다 자동펌프, 카메라, 그리고 위아래 옷 한 벌이 추가되었으니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온갖 짐을 몽땅 가지고 다니는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에 비하면 정말 적은 편이다.
이제 자전거를 타고 취리히 시내의 예약한 숙소까지 가야 한다.
전철에 자전거를 태워서 갈 수도 있지만 아직 날도 환하고 시간도 넉넉하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다. 취리히 공항 1층 밖으로 나오면 고가도로가 보인다. 당연히 자동차 전용 도로일테니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 마침 저 앞에 보이는 경찰 아저씨들에게 자전거길을 물어본다.
여기 자동차 통행금지인 곳으로 고가도로를 따라서 나가면 된다고 한다. 고고싱
자동차 길 옆으로 이렇게 넓은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가 있다.
좀 더 가다 보면 유럽답게 차도 한 편에 자전거길을 터주었다. 당연히 차들은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취리히 호수에 도착했다.
취리히도 스위스니 물가가 비싸다. 오래된 3성 호텔인데 25만 원이나 한다. 지니님과 함께 오려고 미리 2인으로 예약했는데 취소가 안 되는 숙소라 혼자 묵게 되었다.
방도 작고 침대도 내 침대보다 좁다.
그래도 일찍 도착한 편이라 아직 하늘이 밝다. 우리나라보다 7시간 정도 느리기 때문에 인천 공항에서 10시간을 넘게 비행해서 공항에서 취리히 시내까지 왔지만 아직 8월 31일 저녁이다.
날이 밝으니 숙소에 박혀있기 아깝다. 슬슬 나가서 돌아다닌다.
골목을 나가자마자 교회가 하나 있다. 여기저기 교회나 성당이 잔뜩 있는지 시간만 되면 종소리가 요란하다.
성당이나 옛날 건물엔 별로 관심이 없으니 리마트 강을 따라서 취리히 호수 쪽으로 슬슬 걸어간다. 이 강은 나중에 라인강과 합쳐져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이어진다.
알프스에서 흘러든 물로 이루어진 강이라 그런지 강물은 도시치고는 맑은 편이다.
강에 배를 정박시킬 때 사용하던 것인데 눈을 그려놓으니 오리같이 생겼다.
좀 더 가다 보면 그로스뮌스터라는 커다란 성당이 보인다. 12세기에 지었다고 하는데 쌍둥이 첨탑이 특징이다.
취리 벨로... 여기도 공영자전거 서비스가 있다.
취리히 호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넓구나.
평화로워 보이는 호수다. 호숫가의 벤치들은 다양한 사람들로 빈 자리가 거의 없다. 내일은 이 호수길을 따라서 취리히를 빠져나갈 것이다.
백조들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받아먹으러 몰려들었다. 우아한 척해도 이 동네의 속물 비둘기 포지션이다. 마치, 겉으로는 중립인 척 고고한 척 하지만 뒤로는 나치 독일에 열심히 협력했던 2차 대전 때의 스위스 같다.
취리히 호수를 쭉 둘러보는데...
저 멀리 눈 덮인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와... 저게 알프스구나. 8월인데도 하얗구나. 내가 저기로 가야 하는구나...
슬슬 해도 저무는 것 같으니 숙소 쪽으로 돌아간다.
유럽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 놓은 멀쩡한 건축물을 없애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 사이로 지나다닐 수 있도록 유람선을 아주 낮게 만들었다.
줄지어 있는 가게들의 쇼윈도에서 이런저런 공예품들도 구경한다. 도자기 난쟁이들이 좀 못생겼네...
칼 가게에서 파는 특허받은 칼이다. 톱니 모양이 톱니가 아니고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을 형상화해서 고도를 표시해놨다.
숙소 거의 근처인 러브락 브리지(Love Lock Bridge)에 왔다. 이름 그대로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다리이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너저분하다. 그리고, 사랑의 자물쇠를 채웠다가 헤어지면 당사자들이 와서 풀어 치워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여기서 자물쇠를 채우고 5년 내에 헤어지면 반드시 와서 풀어야 하고 풀지 않을 시에는 벌금 또는 징역형에 처한다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만 자물쇠를 채울 텐데... 이런 것도 하는 사람만 한다고 서울 남산에는 애인 사귈 때마다 와서 달고 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숙소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이 동네에서 이 홀리카우인가 하는 햄버거집이 유명하다고 한다. 마침 숙소 바로 앞이니 한 번 먹어본다.
음... 그냥 특별한 것 없는 햄버거 맛이다. 아마,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그나마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싼 맛에 먹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보다 맛있는 햄버거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스위스 취리히에 사람도 자전거도 무사히 도착했다. 지니님이랑 항상 함께 다니다가 혼자 나오니 뭔가 계속 허전하다. 무언가 좋은 것을 볼 때마다 지니님 생각부터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