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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Oct 29.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9 - 비상탈출

오스트리아 기차에 자전거 싣기

2019년 9월 8일



인스브루크를 떠나야 하는 날인데... 3일째 비가 오고 있다. 어제저녁 구름이 잠깐 걷히더니 다시 비가 오고 있다. 티롤의 날씨가 지긋지긋하다.


일단 늘 그렇듯이 아침 식사를 한다.


항상 찍어 올리는 아침 식사 사진을 보면 매일매일이 대동소이한 것이 느껴질 것이다. 커피와 쵸코 후레이크와 살라미는 유럽 아침 식단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다. 식을 진 찍으려고 이쁘게 담는게 아니라 비빔밥이 아닌 이상 음식끼리 섞여서 맛이 뒤죽박죽 되어버리는걸 싫어하는 것 뿐이다.


체크아웃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3일째 비가 내리고 있으니 기온도 더 내려갔다. 로드바이크용 바퀴 중에서도 특히나 얇은 23c 타이어라 빗길 주행을 더 조심해야 한다. 단단히 준비하고 슬슬 출발한다.


강을 따라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로 내려가는데 멋진 다리가 날 유혹한다. 건너지 않겠는가?


다리를 건넜다. 이번 여행 최악의 선택이었다.

동안은 한적하고 좋은 길이었는데... 점점 길이 좁아지더니 비포장길이 되었다. 여기서 되돌아갔어야 했는데... 한참 이어지던 길은 점점 진흙탕에 돌탱이 길이 되더니 끝내는 등산로 같은 게 되어서 산속에서 도로로 간신히 빠져나간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심해지는데 자전거 브레이크 라인이 진흙과 모래로 엉망이다. 일단 물수건을 꺼내서 수습한다. 브레이크 라인으로 튄 모래에 섞인 금속들이 림을 망가트리는데 계속 두면 진짜 엉망이 된다. 휴대 공구로 브레이크 패드에 박힌 금속 조각도 다 뽑아야 한다.  아까운 브레이크 패드...


사서 고생했더니 바로 옆 동네인 Hall in Tirol까지 온 것만으로도 엄청 지친다. 내리는 비도 그칠 생각을 안 하고...


쫄딱 젖어 달리 자전거를 타는데도 체온이 오르질 않는다. 9월 초라지만 이곳 알프스의 산속은 기온이 낮다. 4일째 흐리고 비가 왔으니 기온은 더욱더 떨어져 있다. 어느 집 지붕 밑으로 잠시 대피해서 쉬는데 몸이 으슬으슬 덜덜 떨리고 컨디션이 영 안 좋다.


인스브루크에서 25km 정도 달린 시점에서 오늘 더 달리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근처 Pill-Vomperbach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역 앞에는 내가 놓친 자전거길이 있는데 꽤 깨끗해보인다. 오늘은 계속 길을 잘못 든 듯하다. 플랫폼에 도착해서 침착하게 오스트리아 철도 회사인 OBB의 앱을 핸드폰에 설치하고 곧 오는 기차표를 모바일로 예매한 후 기차에 탄다. 기는 플랫폼만 달랑 있는 워낙 작은 역이라서 늘 숙소를 예약해둔 Sankt Johann으로 가려면 Jenbach에서 갈아타야 한다. 전에 썼던 이탈리아 기차앱과도 비슷한 것 같다.  


기차에 타다가 비에 젖은 바닥이 미끄러워서 우당탕하고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 큰 소리가 났더니 근처에 앉아있던 젊은 청년이 쫓아와서 괜찮냐고 물어본다. 정강이를 조금 찧었지만 괜찮다. 완행열차, 혹은 전철이라 할 수 있는 좀 짧은 기차에 자전거를 이렇게 싣고 에 앉아서 간다.


사실 OBB앱으로 기차표를 예매할 때 실수했다. 옵션에서 자전거 화물 요금을 추가했어야 했는데 처음 하다 보니 그냥 일반석만 예약했던 것이다. 차를 타기 전에 기차역 플랫폼에 영어가 되는 현지인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잘 모르는 것 같았다.

Jenbach  기차역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Sankt Johann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해야 하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있다. 이대로 그냥 기차를 타고 가다간 의도치 않게 부정승차가 되어버린다. 거기다가 이 열차가 자전거 휴대가 가능한 기차인지도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차표에 관한 문제가 생기면 역무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이듯이 역무원을 찾아야겠다. 매표창구의 무뚝뚝해 보이는 역무원에게 자전거 요금을 지불 못 했다고 영어로 이야기하니 자전거 요금만 추가로 결제하도록 해결해준다. 시간표를 보면서 제대로 처리했는지 제대로 목적지까지 가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원래 타고 가려던 그 기차가 맞다.


역 대합실에서 자전거 여행하는 유럽 아저씨와 인사하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컨디션도 안 좋고 자전거 요금을 해결하느라 경황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아저씨는 첼암제까지 간다는 것 같았다. Sankt Johann에 숙소를 예약해놓지 않았다면 나도 첼암제로 가는 게 나았으려나...


기차 시간이 되어 플랫폼으로 가서 기차를 제대로 탄다.


이 기차는 장거리 노선인 듯한데 자전거 거치대가 있다. 부럽다. 우리나라 기차에도 이런 유료 자전거 거치 공간이 있으면 고속철도 라인 따라서 마음껏 돌아다닐텐데...  자전거 앞바퀴 위 고리에 걸고 옆의 고리에 프레임을 걸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다. 정적이다.


따듯한 기차 안에 앉아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니 몸은 편하면서 마음은 불편하다. 날씨 때문에 자전거를 못 타고 점프해야 하다니... 이 날씨에 컨디션이 떨어지고 있는데 무리해서 달리다가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으니 이게 잘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기차는 시골길을 달리고 나는 창 밖의 비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마침 승무원이 검표하러 다니니 가지고 있는 표들을 보여줬다. 내 몸 운반 티켓, 자전거 운반 티켓. 아까 역에서 자전거 휴대 탑승 문제를 해결해놓지 않았다면 당황했을 것 같다.


오늘의 목적지인 Sankt Johann 역에 도착했다. 아직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이미 점심시간도 조금 지났다.


오늘 예약한 호텔 근처로 갔더니 간단한 카페 같은 것이 있어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날이 추운데 비 맞은 생쥐꼴로 들어가니 가게 아줌마가 따듯한 히터 자리에 앉도록 해준다. 일단은 따듯한 굴라쉬 수프 하나 그리고 여기 특산 소시지 하나를 주문한다.


내 몸을 녹여주는 굴라쉬 수프, 그냥 굴라쉬와 다른 점은 이건 스프라는 이름처럼 건더기가 적고 수프에 가깝다. 따듯한 국물이 목을 덥혀주니 힘이 난다.


여기 특산 소시지는 딱히 특별하진 않지만 따듯한 소시지에 빵과 샐러드를 곁들여 나오니 굴라쉬 수프와 어울리는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잘 먹었다. 마지막으로 따듯한 카푸치노로 마무리한다.


이런저런 군것질거리에도 눈이 가는데 일단은 참는다.


이제 호텔에 체크인을 해야지. 오늘 호텔도 무려 4성 호텔의 더블베드를 혼자 쓴다. 이 동네에선 제일 좋은 호텔이니 혼자 다니는 것치곤 호화롭게 잘 지내는 것 같다.


따듯한 물로 씻고 호텔 근처를 배회하다가 비 때문에 멀리 가기 힘드니 다시 돌아와서 낮잠을 잔다. 잠이 보약이지.


잘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호텔 바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맥주 한 잔 먼저 해주시고,


제대로 굴라쉬를 시켜 먹는다. 사실 시큼한 토마토소스를 그리 안 좋아하지만 먹을만한 굴라쉬였다. 옆에 이것저것 곡물을 섞은 것 같은 덩어리는 결국 조금 남겼다.


이 지긋지긋한 비! 저녁에도 그칠 줄 모른다. 호텔 방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면서 쉬다가 간간히 창문을 내다보는데 한숨만 나온다.


원래 가려고 했던 총 거리는 약 95km였는데 겨우 25km 밖에 달리지 못했다. 대충 봐도 원래 경로에서 완전히 빗나가 있다. 자전거 끌고 등산도 했으니 50km같은 25km였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할 때는 비상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장 기본이 문제가 생겼을 때 조치를 하기 쉽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기차나 버스가 다니는 경로로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안전하다. 아마 끝까지 달렸다면 이 비 속에서 70km 더 달 해발 900m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을 것이고 비 때문에 계속 진행이 지체되어 해 저물 때 쯤 숙소에 도착하면서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내일은 비 맞으면서 달렸던 티롤 지방에서 잘즈브루크 지방으로 넘어가게 된다. 티롤을 벗어나면 비가 그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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