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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과 지니 Nov 04. 2019

존의 알프스 자전거 여행 10 - 첼암제

첼암제와 잘츠부르크 지방

2019년 9월 9일


오늘은 Sankt Johann에서 Fusch까지 65km를 달린다. 겨우 65km? 더 가고 싶어도 Fusch 뒤쪽으로는 해발 2500m 이번 여행 최대 오르막길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더 갈 수도 없다. 가능하면 최대한 산 중턱까지 올라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렇게 숙박 가능한 곳이 Fusch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늘부터 확인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래도 간밤에 잘 쉰 덕분인지 감기 기운이 있다거나 피곤하지는 않다. 하룻밤 쉬어간 Sankt Johann은 비가 와서 숙소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으니 동네에 별다른 인상이 남지 않는다.


하루 묵고 가는 이번 숙소는 4성 호텔답게 뭔가 매우 깔끔하고 고급지다. 내가 5성 호텔까지 자보긴 했지만 3성 호과 비슷한 가격에 가로 나온 시설 좋은 수기의 시골 4성 호텔이 만족도가 제일 좋은 것 같은 느낌이다.


조식으로 이것저것 나온다. 신난다. 과일 간 주스 같은 것과 요거트와 치즈... 일 간 건 입 안에서 과육이 뭉글뭉글한다.


다양한 치즈와 햄, 채소, 좀 짜지만 훈제 연어도 나왔다. 꽤 짠데 지니님이 좋아했으려나...


누차 얘기하지만 호텔 조식의 수준은 따듯한 요리로 결정된다. 여기는 따듯한 소세지와 훈제햄 같은 것과 에그 스크램블... 특별한 것은 없는 무난한 수준이다.


뭔지 모를 두려움에 묽은 치즈들은 조금씩 가져와서 맛만 본다. 역시나 맛이 애매하 조금만 가져오길 잘했다.


비가 오니 나가기 싫다. 오늘은 주행 거리도 길지 않으니 조식을 먹고 나서 오전 10시까지 로비의 소파에서 쉰다. 어메 푹신혀라~ 


여전히 비는 내리는데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니 나는 출발해야 한다. 65km면 내평일 운동하는 수준의 거리니 느지막이 출발해도 되겠지.


체크아웃하고 짐을 다시 한번 정리해서 가방을 채운다. 반에 비해서 짐이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장 가방에 꽉 찬다.


마을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광장 근처를 한 바퀴 빙 돌아서 나간다. 처 스키 슬로프들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 같지만 스키 시즌이 아닌 지금은 조금 큰 시골 마을 정도인 느낌이다.


이제 마을을 빠져나간다. 자전거길이 있으니 자전거길로 가고.. 반대로 자전거 타고 오는 아저씨는 찻길로 온다. 앞에서 자전거가 느릿느릿 달려도 차들은 조용히 뒤따르는 게 매너다.


Sankt Johann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시골 들판이 펼쳐진다. 스키로 유명한 곳이라 여기기에 리프트들이 보인다.


당분간 164번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비 오는 길의 2륜 자전거는 항상 위험하다. 조심조심 자전거길로 달린다.


장장 4일째, 티롤 지방으로 넘어온 다음 날부터 계속 흐리고 비가 온다. 마음도 날씨처럼 우울해지는데... 그때 길 옆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 알파카들이 나랑 눈이 마주치니 이리로 달려온다. 려오는 모습도 재미있다.


두 녀석이 오니 새끼와 나머지 한 마리까지 모두 달려온다. 내 근처에 와서는 눈치를 보는데 내가 그저 바라만 보니 흥이 식었나 보다. 그래도 이 녀석들 덕분에 기분이 확 밝아진다.


자전거길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아니, 도로 옆으로 잘 이어지던 자전거길은 갑자기 차도에서 멀어지더니 비포장길이 되어버린다. 이 날씨에 비포장길을 달리긴 싫으니 돌아 나와서 차도로 달린다.


Fieberbrunn이란 마을을 지나면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자전거길은 오른쪽 평지로 가라고 나를 유혹한다.


자전거길로 가볼까.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서 마을 샛길로 요리조리 이어지던 길은...


점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이어지더니 헤어핀까지 있는 오르막길이 되었다.


오르막길 자체는 그리 힘들지는 않은데... 꼭대기에 열심히  올라가니 저 밑에 차도가 보인다. 속았다. 차도로 왔으면 훨씬 편하게 오는 길이었다.


163번 도로와 다시 만났다. 이제부터 자전거길 표시에 안 속을 거다. 이후로도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Hochfilzen이란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인 것 같은데 기차역도 있고 피자집도 있다.


마침 비도 내리기 시작하니 피자는 정말 먹기 싫지만 점심으로 스파게티라도 먹을까 싶어서 피자집에 들른다.


페퍼론치노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아주머니가 주문받으면서  엄청 매운데 괜찮겠냐고 두 번 물어본다. 정말 엄청 매운가?


일단 믹스드 샐러드를 먹고 있으니 스파게티가 나왔다. 맥주 생각이 나지만 음주 라이딩은 금물이라 콜라나 마신다.


페퍼론치노가 송송 썰어 들어가 있는 페퍼론치노 스파게티... 맛은?... 내가 종종 매콤하게 만들어먹던 알리오 올리오랑 비슷한 매운 정도다. 유럽 사람들은 매운 것을 안 먹으니 이 정도도 엄청 매운 거지만 난 매운 걸 즐기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매운맛에 길들여진 한국사람이다.


스파게티 한 릇 뚝딱 비우고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신다. 전체적으로 먹을만했지만 이탈리아 본토와 비교하면 살짝 아쉬운 맛, 나중에 이탈리아 바닷가에 가면 시푸드 파스타로 배를 꽉꽉 채워야지.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나와보니 비도 잦아들었다. 다시 출발인데 왠지 완만한 느낌이다.


지역 경계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부터 티롤이 끝나고 잘츠부르크다. 지겨웠다, 안녕이다 티롤. 르막길을 한참 올라와서 역 경계 만났다면 여기도 어느 언덕 꼭대기일 것이다.


완만한 길을 슬슬 달리는데 표지판 하나가 보인다. Grießen Pass, 해발 1000m. 그리에센 패스... 별 생각 없이 달린 완만한 고갯길이 해발 1000m였다. 어째 끝도 한도 없이 계속 올라가더라니...


그렇다는 것은 당분간 내리막이란 것이겠지? 길도 점점 마르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달린다.


비가 그치니 길 옆의 알프스 산봉우리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봉우리에 희끗희끗 눈이 보이니 알프스 느낌이 물씬 난다.


Leogang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바이크 파크라는 안내판이 있다. 산비탈의 스키 슬로프를 여름에 다운힐 자전거용 슬로프로 만들어놨다. 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이런 바이크 파크를 이용해본 적이 없다. 올마운틴 산악자전거를 탈 때도 인공물보다는 산속을 누비는 걸 좋아는데 이제는 바이크 파크도 경험해보고 싶긴 하다.


개천을 따라서 아주 약한 내리막길을 쭉쭉 내려간다.


Dorfheim이란 동네에서 마을길을 통해서 첼암제로 가는  311번 도로로 가야 한다. 어떻게 가야 하나 싶은데 마침 자전거길 표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맞는 길이겠지...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가니 노면 상태가 안 좋은 길이 조금 있었지만 무난하게 311번 도로에 합류했다.


311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드디어 첼암제(Zell am See) 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차들과 함께 달리다가 Kirchham이란 마을에서 첼암제 자전거길 표시를 따라서 들어간다.


첼암제로 가는 길, 구름 사이로 조금씩 보이던 파란 하늘은 점점 넓어진다. 며칠 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환한 햇빛인가.


그런데 마을을 몇 데 지난 것 같은데도 첼암제는 보이지 않는다.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멀지?


들판을 지나고 꿉꿉하게 느껴지는 울창한 나무숲을 벗어나니 갑자기 눈 앞에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첼암제가 나타났다.


원래 셀카질은 잘 안 하지만 햇빛이 반짝이는 첼암제를 만나니 신이 나서 내 인증샷을 남겨본다. 광이라 잘 안 보이네...


마음 같아서는 호수를 유유히 한 바퀴 돌고 싶지만 그리 작은 호수가 아니니 가는 길로 반 만이라도 돌아보고 가자. 우리나라에는 할슈타트가 티비에서 자주 나오다 보니 유명하지만 요즘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고 한다. 첼암제는 그렇게 관광객들로 바글거리지는 않으면서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이 근처 관광객은 여기 첼암제 주변에 다 모여있는 것 같다. 그래도,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분리되어 있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뒤엉켜 다니지 않는다.


어딜 둘러봐도 화창한 하늘 아래 파란 호수가 반짝거리니 지금까지 축 쳐졌던 기분이 급속 충전되는 것이 느껴진다.


매 시 정각에 분수쇼도 있나 보다. 간발의 차이로 멀찍이서 보고 슬슬 갔더니 이미 끝났다. 수대가 보이는 연장 같은  공원 시설이 여기 첼암제의 중심인가 보다. 풍경도 좋으니 잠시 쉬어간다.


첼암제 기차역이 있다. 어제 탔던 기차는 빙 돌아서 첼암제에 오는 것 같았는데 어제 도착했으면 날이 흐려서 이 광경을 못 보았을 것 같다. 연속으로 날씨가 나쁘다가 이런 멋진 곳에서라도 맑아지니 다행이다.


다시 자전거길을 따라 달린다. 호수가 끝나도 계속 자전거길이 이어지길래 쭉 따라간다.


첼암제 남쪽을 지나서도 자전거길은 계속 이어지니 마냥 따라간다.


비포장길이지만 그럭저럭 달릴만한 길이 이어진다. 길 양 옆으로 나무들이 서있는 이런 길을 달리면 뭔가 특별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니들이 풀을 뜯는?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면 자전거길이 끝난다.


Bruck an der Großglocknerstraße라는 긴 이름의 동네로 나왔다. 동네 이름 자체가 글로스글로크너 가는 길의 다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글로스글로크너 쪽으로 107번 도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면서 달리지만 첼암제에서라도 맑았으니 다행이란 생각뿐이다. 잔뜩 흐리고 뿌연 호수를 보았으면 기분이 안 좋았을 것 같다.


길을 가는데 고양이가 딴 데를 쳐다보고 찻길을 횡단하다가 나를 보고 당황해서 도망간다. 고양이들은 어디에서 만나도 이상한 녀석들이 많다.


107번 도로로 달린다. 약한 오르막길인데 슬슬 지치는 느낌이 든다. 아무리 달려서 마을들을 지나쳐도 오늘의 목적지인 Fusch가 나타나질 않는다.


드디어 Fusch가 나타났다. 오늘은 거리가 길지 않았는데도 힘들었다.


Fusch 경계를 넘어서도 조금 더 올라가서 완전히 마을 중심에 도착해야 숙소가 나왔다. 유쾌한 남자 직원이 여러 가지를 빠른 말로 안내해주는데 의외로 잘 알아들었다.


묵직한 열쇠를 받아서 내 방을 열어보니 또 더블 침대다. 이럴 때는 보통 바깥쪽 침대만 얌전히 쓴다.


비를 뿌려대던 하늘은 다시 맑아졌다. 바로 앞에 교회가 있고 그 앞에 관광안내소와 마을이 하나뿐인 가게가 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배가 좀 고프다. 호텔의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어차피 근처에 뭐 대단한 음식점도 없어 보인다.


먼저 당연히 맥주 큰 거 한 잔!


그리고 오늘도 슈니첼 하나 주문한다. 점심에 면을 먹었으니 저녁은 무조건 고기다. 무난하게 맛있다. 슈니첼을 몇 번을 먹었지만 아직 질리지 않고 있다.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른데 아직 해가 안 떨어졌다. 모처럼 날이 맑으니 마을을 산책하기로 한다. 자전거길 안내가 되어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대부분 산악자전거를 위한 지도다. 이 근처만 해도 며칠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을 것 같다.


그 옆에는 마을 안내도가 있는데 간단히 마을을 산책할 수 있는 것 같다.


안내 지도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슬슬 걸어가 본다. 광안내소부터 시작이다.


바로 뒷산이 이렇게나 높다.


축사 같아 보이는 건물이 있고 그 뒤 언덕에 소들이 돌아다닌다.


마을 뒤에 폭포가 있다는데 폭포에서 흘러내려오는 시냇물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주 거칠게 흘러내린다.


폭포 가는 길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 길이 소똥으로 뒤덮여 있어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저 뒤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 폭포가 보이는데... 소똥 때문에 갈 수가 없다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마을 입구로 다시 내려간다.


바이오에너지로 열을 만드는 장치가 있다. 나무 부스러기가 잔뜩 쌓여서 좋은 숲 향기가 나는데 속에서는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내는 열로 연기가 솟아오른다.


마을 뒤 글로스 글로크너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덮인 산봉우리가 보인다. 내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해발 2500미터의 언덕길을 오르게 되는구나. 

마을 매점에 가봤더니 정말 작은 가게다. 간단한 군것질거리와 음료수, 그리고 싸구려 기념품 조금밖에 없다. 콜라나 하나 사들고 숙소에 들어가서 쉰다.


드디어, 티롤 지방을 벗어났고, 비에서도 벗어난 기분이다. 아침에도 비가 왔고, 저녁에도 비가 잠깐 왔지만 다행히 첼암제를 지날 때는 비가 그쳤다. 그리고, 첼암제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첼암제와 주변 산들의 경치에 충분히 만족한 하루였다.


겨우 65km를 달렸는데 긴 오르막길을 달려서 그런지 다리에 피로가 누적된 것이 느껴진다. 여행 출발 전부터 계속된 햄스트링 쪽의 염증이 도지려고 해서 다리가 영 불편하다. 내일 해발 2500미터의 글로스글로크너 고산 도로에 올라가야 하는데 걱정부터 앞선다. 체크인할 때, 남자 직원이 현재 글로스글로크너의 상황을 보여주는데 믿기 어려운 눈밭에 기온도 영도에 육박한다. 내가 지금 가진 옷으로 견딜 수 있으려나? 지금 다리 상태와 몸 컨디션으로 견딜 수 있으려나? 인스브루크에서 사다 놓은 테이핑 파스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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