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갑작스럽지만 지니님의 이동 발령으로 이제 태백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추석 자전거 여행은 태백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경북 동쪽을 한 바퀴 크게 돌기로 했다. 자전거로 경북 동쪽의 여기저기 가볼 만한 곳들을 두루 구경하러 다니는 것이 목적이다. 비슷한 경로를 시도해보고 싶다면 영주에서 출발해서 울진에서 돌아오는 방법이 좀더 수월할 것이다.
그 첫날인 오늘은 태백시에서 출발해서 봉화를 거쳐 영주까지 90km 정도를 달린다. 큰 오르막길은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넘어가는 관문인 넛재이다.
태백은 날씨 변화가 심하다.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마냥 비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너무 지체할 수 없어서 일단 출발하기로 한다. 태백의 주도로인 태백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시내 길은 사거리가 많아서 차들이 살살 천천히 다닌다. 그래서 태백 시내에서 자전거로 이동할 때에는 주로 이 시내 길을 이용한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지나간다. 해발 680m라 쓰여 있다. 태백은 서울보다 거의 항상 기온이 5도 정도 낮다.
태백산 국립공원 가는 길인 상장삼거리를 지나면 일단 태백 시내는 벗어난다.
태백은 교통망이 얼마 없다 보니 항상 차들이 많은 길이 있다. 상장삼거리부터 태백 터널 입구까지 차들과 함께 달려야 한다.
수갱, 수직으로 파내려간 광산 구조물이 보인다. 대한석탄공사의 제2수갱이다. 이 제2수갱이 보이면 태백 탄광업의 중심지인 장성이다. 태백에서 장성이라 하면 전라도 장성이 아닌 여기 장성동을 말한다.
내가 자꾸 놓치는 길이 있다. 장성터널을 우회하는 길이 있는데 자꾸 깜빡하고 터널을 차들과 함께 지나간다. 그리 길지 않은 터널이지만 부담스럽다.
장성터널을 넘으면 찻길 옆으로 자전거길이 있다. 아마 태백에서 제대로 된 유일한 자전거길일 것이다. 금방 끝나버리는 짧은 자전거길이지만 나름 달릴만한 길이니 안전하게 여기로 달린다.
자전거길은 곧 끝나고 태백터널의 입구인 태백교차로에서 차들은 대부분 터널로 들어간다. 우리는 석포 방향으로 직진한다.
계속 달리면 태백 고생대 박물관과 터널을 지나 낙동강이 태백산맥을 뚫고 넘어가는 통로인 구문소를 지나간다. 사실 태백에서 석포 방향으로는 일방통행으로 구문소를 건너뛰게 되지만 어쨌든 구문소를 지나간다.
이제부터 정말로 자전거로 달리기 좋은 한가한 길이 시작된다. 태백은 시골이라기엔 너무 차가 많은 동네다.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는 태백선 무궁화호가 지나간다.
여기서 계속 낙동강을 따라가면 석포를 지나 오지마을 중 하나인 승부에서 길이 끝난다. 우리는 경상북도 봉화로 넘어가야 한다. 신작로와 구길이 갈라지는 여기를 지나면 경상북도 봉화다.
원래 구길에서 석포 방향과 봉화 방향이 갈라지는 육송정 삼거리가 있는데 여전히 이 삼거리에는 슈퍼가 있다.
이제부터 차가 정말 없는 한적한 길을 달린다.
현동까지 20km, 오늘은 봉화를 지나 영주까지 달린다. 대부분의 차들은 아까 태백터널을 통과해서 31번 국도인 저 고가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쪽에는 차가 없다.
열목어 마을을 지나간다. 열목어는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산다는데 우리나라가 남방한계선이라고 한다. 물 맑기로 유명한 백천계곡은 나중에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이제 청옥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전에는 태백에서 봉화를 가려면 넛재를 넘어야 했는데 터널을 잔뜩 뚫어서 봉화 방면으로 소통이 쉬워진 것이 2018년이니 얼마 안 된 일이다.
여기서부터 넛재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처음 왔을 때, 아무리 달려도 끝이 안나는 길고 긴 오르막길에 질릴 뻔했지만 지금은 익숙한 길이다.
이 동네는 산 하나에 날씨가 바뀌는 곳이다. 오르막길 중간부터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한다.
한참 오르다 보면 드디어 정상의 넛재 표지판이 보인다.
해발 896m의 오르막길이다. 지니님은 처음 왔을 때 모습 그대로 사진을 남긴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봉화를 오가는 차들이 이리로 다니고, 정상 근처에 옥수수를 파는 노점도 있었다. 제대로 된 산골 옥수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 집터만 남아 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여기를 내려가면 넛재터널 입구에서 31번 국도와 합쳐진다.
31번 국도에서 차들과 함께 달려야 하지만 한 차선을 이렇게 막아놔서 자전거가 달리기 편하다. 원래 고선 교차로에서 빠져나가면 차들을 피해서 우회할 수 있지만 내리막길이니 냅다 달린다.
사실 오늘 최대의 난관은 넛재가 아니다. 내리막길의 끝에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될 때 노루재 터널이 시작된다. 터널은 길고, 길은 좁으면서 갓길도 여유가 없고, 차들은 많고... 여길 지날 때마다 정신이 없다. 우회할 수 있는 옛길 노루재가 있긴 하지만 그냥 다음부터는 안 오는 걸로 한다.
노루재 터널만 지나면 35번 국도 옆으로 한적한 길이 춘양면 입구까지 이어진다.
슬슬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침 이전에 지나갈 때 들렀던 슈퍼가 있으니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쉴 때도 되었고 비도 오니 느긋하게 쉬어간다. 몇 년 만에 지나가는 길이니 아주머니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에겐 좋은 쉼터다.
춘양에서 잠깐 36번 국도를 달리지만 곧 우회길로 빠질 수 있다. 조금 더 힘들지만 차들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36번 국도를 따라가면 법전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중앙분리대가 있는 큰길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은 피하고 싶으니 조금 돌아가도 샛길로 빠진다.
그렇게 법전면 읍내를 빙 돌면...
36번 국도와 합쳐지는 곳에서 샛길로 들어갈 수 있다. 사실 여기 36번 국도변 자재보관 창고에서도 샛길로 들어오는 통로가 있는데 아무래도 큰 도로는 조금이라도 덜 타고 싶다.
이제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이 길을 쭉 따라가기만 하면 점심 식사를 할 포인트인 봉화에 도착한다.
드디어 봉화군 읍내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쉬어간다. 비 때문에 일정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큰 지장은 없다. 여기 칼국수집이 유명하다길래 칼국수를 한 그릇 먹는데 생각보다 대단한 맛은 아니다.
이제 봉화 읍내를 관통해서 옆 동네인 영주까지 달려야 한다.
영동선 철길을 따라가면 36번 국도를 피해서 우회길로 갈 수 있다. 봉화 읍내를 벗어나면 해저리에 깔끔한 한옥집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도를 최대한 피하는 것은 국도가 스펀지처럼 주변의 차들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그 근처 길들은 아주 한적하게 달리기 좋기 때문이다.
영동선 기찻길을 따라가다 보면 건널목을 몇 번 건너지만 매우 한산한 노선이라 기차를 보기 힘들다.
36번 국도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턴 영주 시내까지 금방이니 36번 국도로 영주시내에 진입하면 된다.
드디어 봉화군에서 영주시로 넘어간다.
36번 국도를 따라서 조금만 가면 오늘 예약해둔 숙소가 나온다.
여기서 영주 부석사가 가까운데 부석사는 나중에 따로 가볼 생각이다.
영주 시내에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과 자전거를 두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동네 구경을 좀 하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숙소에서 북쪽으로 시장이 이어진다. 무슨 유명하다는 떡볶이 집도 있는데 제대로 밥을 먹어야겠다.
시장 구경도 하고 한우 거리도 가보고 했는데 결국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서 삼계탕을 먹는다. 지니님이 손꼽을 만큼 엄청 맛있는 삼계탕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아침에 비만 오지 않았다면, 노루재터널을 우회했다면 완벽했을 자전거 여행 첫날이었다. 그래도, 처음 와보는 곳이니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경북 동쪽, 그중에서도 BYC라고 불리는 봉화, 영양, 청송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조용한 동네라 할 수 있다. 역시나, 차들이 몰리는 국도를 제외한다면 정말 한가하게 자전거 타기 좋을 만큼 차가 없는 곳이다. 이번 추석 여행도 그렇지만 이후로도 이런 자전거 여행의 보물 같은 곳을 두루 돌아다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