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바다는 삼척과 울진이다. 태백에서 삼척 가는 38번 국도는 현재 직선화 공사 중인 구간이 있어 공사 후에 가보기로 하고, 오늘은 태백에서 출발해서 36번 국도를 최대한 피해서 울진까지 달려보기로 한다. 태백 시내에서 출발하면 110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우리는 거리를 줄여서 육송정 삼거리에서부터 출발한다.
육송정 삼거리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탈 준비를 한다. 육송정은 6그루의 금강송이 정자처럼 서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삼거리에서 북쪽으로는 태백, 다리를 건너 낙동강을 따라가면 봉화군 석포면, 서쪽으로 가면 넛재를 넘어 소천면으로 갈 수 있다.
넛재 방향으로 출발한다. 이 길은 4개의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태백에서 봉화로 가던 옛 31번 길이다.
일단은 송정리천을 따라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숲 속이라 경치도 소소하게 좋다.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대현리 마을이다. 석포 제련소와 아연 광산이 생기기 전에는 여기뿐만 아니라 석포 근처까지 열목어가 정말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오염에 쫓겨 이 상류 쪽 계곡에서만 산다.
봉화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이정표에 나타나는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안 된다. 31번 국도는 자전거 통행이 금지된 4개의 터널이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자전거는 이대로 청옥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옛 31번 국도 구간을 달려야 한다.
터널과 터널을 잇는 고가도로 밑으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넛재는 해발 896m로 우리 기준에서는 그렇게 높고 힘든 오르막길은 아니지만 오늘을 끝으로 당분간은 피해 다니기로 한다. 전국의 오르막길을 대부분 다녔지만 그렇다고 오르막길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특히나 똑같은 길을 여러 번 다니는 것은 재미없다.
넛재 정상 표지판에 로드 자전거 동호인들이 모여있다. 태백의 자전거 동호인들은 지역 특성상 대부분 MTB를 타니 외지 사람들일 것이다. 넛재는 지니님이 아직 오르막길에 익숙지 않을 때 고생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서 지나갈 때마다 넛재 표지판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으니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고개를 내려간다.
봉화 쪽의 넛재 길이 엉망이 되어 있다. 차가 안 다니는 길이니 적당히 피해서 내려간다. 터널 개통 전에는 태백에서 봉화로 바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지금은 동네 주민들 외엔 다니지 않는다.
길은 넛재터널 앞에서 31번 국도와 합쳐진다.
큰길이지만 이 구간은 60km 과속 구간 단속 구간이다. 차들도 쌩쌩 못 달리는 구간이니 우리 같은 자전거가 다니기에 좋다. 터널을 연속으로 뚫고 31번 국도를 직선화하면서 기존의 길을 거의 박살내서 통행이 불가능하게 해 놓은 만큼 농기계 같은 자동차 이외의 탈것들이 터널을 안전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차선을 자동차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1/3 쯤 막아놨다. 덕분에 우리도 편하게 간다.
어느 정도 달리다 보면 차들을 막아주는 구조물들이 없어진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을 벗어나 소천2터널 전에 고산리 쪽으로 빠져나가는 게 편하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도 차들이 없는 편이 좋다. 물론 이쪽이 경치도 좀 더 좋다.
소천면 읍내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은근히 자주 다니던 길이다. 현동삼거리의 편의점이 아주 쉬기 좋은 쉼터다.
일단 오늘은 여기 소천면에 볼 일이 없다. 멈추지 않고 서쪽으로 읍내를 빠져나간다.
컴컴하고 오래된 현동 터널을 지나면 잠깐 36번 도로를 달려야 한다.
36번 국도는 영주에서 봉화를 거쳐 울진 북부까지 이어지는 큰 도로로 고속도로가 없는 경북 북부 지방에서 고속도로 대신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곳이다. 자전거로 다닐 때에는 이 36번 국도 구간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즐겁고 안전한 자전거 여행의 핵심이 된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은 싫다. 이번 자전거 여행의 목표는 이 36번 도로를 최대한 피해서 울진까지 달리는 것이다. 그 첫 번째로 분천 터널 전의 매현교차로에서 36번 도로를 우회해서 회고개재를 넘는다.
길 옆에 외씨버선길 표시가 있다. 트래킹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트래킹 코스다.
그리 힘들지 않게 해발 477m 회고개재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서 쭉 내려가면 분천역이다. 분천을 지나면 한 동안 아무것도 없다고 할 만큼 보급하기가 힘드니 분천역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분천도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던 동네였는데 관광열차를 시작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다.
몇 년 안 온 사이에 무슨 이유에선지 산타마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타 테마로 마을을 꾸며놨다. 마을이 많이 이뻐지고 관광객도 많이 왔다고 하는데 산타와 분천의 연관성은 잘 모르겠다.
일단 역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냥저냥 먹을만하긴 한데 몰려든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음식 나오는데 꽤나 오래 걸린다.
밥을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온 김에 분천역도 둘러보기로 한다.
분천역 흰 호랑이 인형은 여전히 있구나.... 근데 몇 년을 햇빛을 맞아서 그런지 너무 삭아버렸다.
분천역은 소박하니 이쁜 역이었는데 이상해졌다. 왜 하필 겨울에만 잠깐 나타나는 산타를 컨셉으로 한 것일까... 주 5일 일하는 나는 12월 한 달 반짝 일하면 되는 산타가 부럽다.
산타마을이라고 역 앞에 여러 조형물이 있다. 어린 왕자 너는 또 왜 와있니....
오? 너가 여기 왜 있니?
알파카 두 마리가 있다. 딱히 사람에게 살갑게 구는 녀석들도 아닌데 이 녀석들은 그냥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다시 출발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분천삼거리에서 다시 36번 도로를 잠깐 탔다가 자미터널 전에 다시 우회길이 있다.
우회길에서 광회1리로 가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광회1리부터는 이미 울진군이지만 울진군 읍내까지는 한참 가야 한다.
해발 480m인 꼬치비재를 넘어간다.
36번 국도 밑으로 샛길이 계속 이어진다. 샛길이기 때문에 36번 도로로 합류하는 이정표가 계속 나타난다.
운영 안 하는 휴게소 건물 같은 것을 지나면 봉화군 소천면에서 울진군 금강송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정표로도 알 수 있지만 이미 강 건너 광회1리 마을은 울진군이었다.
옥방 교차로를 지나면 광회2리 마을 입구에서 또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수비면으로 가는 표시가 있는데... 수비면 쪽은 나중에 다녀올 것이다.
아주 짧은 터널이라면 나는 지나가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니님이 고개를 넘더라도 안전한 옛길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터널을 옛 고갯길로 우회한다. 그러니 지니님은 오르막길을 열심히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해발 619M 답운재를 넘는다. 고개 표지판은 정상에서 조금 더 가면 있다.
답운재를 넘어가면 답운교차로에서 36번 국도와 다시 합쳐지지만 1km 정도만 참고 달리면 바로 다음번 출구인 쌍전교차로에서 우회길로 빠질 수 있다.
쌍전교차로부터는 36번 국도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차도 거의 안 다니는 조용한 길을 따라 계곡을 달린다. 오늘 코스의 하이라이트가 여기부터 시작된다.
금강송면이라는 이름답게 중간에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길이 있다.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에서 다른 곳보다 확연히 다른 풍경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곧게 높이 뻗은 금강송들이다. 그런 금강송이 큰 숲을 이루고 있다니 금강송 군락지는 조만간 한 번 가야겠다.
36번 국도와 완전히 헤어지면 이제부터 아주 멋진 자전거길이 펼쳐진다. 깊은 계곡을 보면서 내리막을 달리는 차 없는 길이다.
금강송면 읍내에 도착했다. 조용한 마을이다.
왕피천 유역 탐방안내소에서 잠시 쉬면서 화장실을 다녀온다.
이제부터 불영계곡의 깊은 골짜기를 즐기면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지역 자전거 모임의 운동 코스인지 MTB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꽤나 길게 내려왔다 싶을 때 울진읍 표지판이 나타난다.
아직 자전거 타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왕피천 계곡을 따라서 기암괴석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이제 내리막길이 끝난 것 같다. 울진까지 5km가 남았다.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리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할만한 울진 왕피천 공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917번 도로를 따라 읍내로 바로 갈 수 있지만 오랜만에 왕피천 공원과 은어다리를 보고 싶다.
경북 동해안 자전거길의 출발점이라 그런지 은어다리에는 항상 자전거인들이 보인다. 은어다리를 한 번 건너서 읍내로 들어간다.
이미 알고 있더라도 일단 시외버스 터미널에 들러서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표를 끊어야 저녁을 먹는다. 혹시라도 알아놓은 시간표와 현지 버스 시간이 다르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저녁은 지니님이 미리 알아놓은 식당을 찾아가서 회국수를 먹는다. 물회에다가 국수를 넣어서 후루룩 말아먹는 스타일이다.
우리는 거리를 조금 줄여서 달렸지만 태백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10km 코스라고 해도 내리막길이 많으니 크게 무리가 오는 코스는 아니다. 다만 태백 상장동에서 장성까지 차들과 함께 달려야 하는 구간을 피하고 싶으니 거리를 조금 줄였다. 육송정 삼거리에 세워둔 차는 다음 날 철암 쪽으로 싫은 구간을 완전히 우회해서 자전거 타고 가서 가져왔다.
가장 핵심인 멋진 구간은 왕피천 상류를 따라가는 불영계곡로 구간이다. 깊은 계곡을 따라서 절벽 같은 길을 달리는 멋진 코스다. 그러니 굳이 태백에서 출발하지 않고 봉화에서 출발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노루재 터널을 옛길이나 임기역 쪽으로 우회하는 것을 추천한다.
분천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간에 먹을만한 곳이 몇 군데 없는 코스다. 달리고자 한다면 보급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