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단위의 지역에서 군청 소재지가 아닌 주변 면 단위는 교통편이 불편하니 대부분 차량으로 가야 한다. 차를 주차해두기도 좋고 주말에도 어지간해서는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곳이 면사무소다. 오늘은 영양군에서 울진 가는 길목에 있는 수비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출발한다.
출발하자마자 갈림길이 있다. 일단 917번 지방도로 들어간다. 당분간은 917번 도로를 따라갈 것이다. 917번 지방도는 나름 확인한다고 했는데 마지막에 비포장 임도가 되는 길이기 때문에 로드 자전거로는 어려운 길이다.
후에 무슨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나는 이런 한적한 3 자릿수 지방도로가 너무 좋다. 길 양 옆으로 논밭이 펼쳐지고 차들이 거의 없다.
앞쪽에서 도로가 왼쪽으로 굽어있다. 직진으로 가면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길이 끝난다. 그대로 917번 도로를 따라 달린다.
길을 따라가면 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150m 정도 올라가는 작은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를 넘으면 송하리다. 작은 계곡에 기암절벽이 눈길을 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길이 좁아진다.
좁은 길이라도 포장이 되어 있으니 달리기에 나쁘진 않다.
좁아졌던 길은 둔지터농원 들어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포장 상태도 안 좋아진다. 이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래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올라간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간다. 포장만 되어 있으면 문제없다. 그런데...
고개 정상에서 포장길이 끊긴다. 사전 조사할 때 오르막길 쪽만 봤더니 완전한 포장길인 것으로 속았다.
원래 이런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자동차 몇 대가 마침 지나간다. 일반적인 임도들처럼 바리케이드로 막지 않고 실제 이용하는 도로가 맞다. 조금만 가면 포장길이 다시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걸어간다. 이래서 우리는 로드용 클릿이 아닌 MTB용 클릿을 주로 쓴다. 갑자기 어디서 걷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이 맑은데 좀 뿌옇게 보인다. 미세먼지는 아니고 이 소나무 종류들이 꽃가루를 뿜어대는 시기이다.
나랑 다니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지니님도 체념하고 잘 걷는다. 지방도는 이럴 수 있다. 울진 매화면에서 백암면 가는 56번 국도나 양양 부연동 계곡의 59번 국도 같은 곳은 무려 두 자릿수 국도인데도 제대로 포장 안된 곳이 있으니 지방도는 더더욱 이럴 수 있다.
고개를 거의 다 내려와서야 포장도로를 만난다. 그마저도 중간중간 비포장이 섞여있다.
제대로 된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이 버스 정류장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버스 정류장 사진을 찍는 사이에 지니님은 저 멀리 가버린다. 우리는 사진 찍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쭉 달리다가 918번 도로와 만나면 918번 도로로 영양군청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달리는 길에 이상한 건물들이 모여있다. 영양에 있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 복원센터라고 한다.
가로수길이 나오면 곧 영양읍내로 들어가게 된다.
버스 정류장에 별천지 영양이라고 쓰여 있다. 영양군이 전국에서 가장 광해가 적어서 별 보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수비면 북쪽에는 영양 천문대도 있다.
자전거길은 자꾸 31번 국도로 영양읍내를 우회해서 가라고 하는데 위험한 도로는 아니라서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도 되지만 읍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영양 읍내가 무슨 축제로 붐빈다. 영양 읍내는 서쪽으로 가는 가오리처럼 생겼으니 우리가 가는 길은 꼬리로 들어가서 큰길을 만나서 좌회전하면 된다. 결국에는 31번 국도를 달리게 된다.
큰 도로를 싫어하지만 점심 먹으러 가려했던 입암면까지는 우회도로가 없으니 그대로 따라 달린다.
입암면에 도착했다. 입암에도 약수가 있고 그쪽에 우리가 가려고 하는 식당이 있다. 왕복 5km 정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지만 식당 선택은 전적으로 지니님이 맡는다.
점심으로 닭불고기를 먹는다. 보슬보슬하니 양념이 적당히 되어 있어 먹을만하다. 닭죽까지 맛있게 잘 먹었다.
입암약수가 바로 앞이지만 지니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빠져나간다. 지난번 봉화에 갔을 때 오전약수의 이상한 맛이 아직도 생각나나보다.
동네에 들어왔던 길을 고대로 따라 나가서 청암교차로에서 911번 지방도를 따라 청기면 방향으로 간다.
각 지역 이름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 실려 있기도 하다. 입암(立岩: 선바위)이라는 이름답게 선바위가 있다. 영양의 대표적인 하천인 반변천과 청기면에서 흘러들어 가는 지류인 동천이 만나는 곳에 기암절벽이 있는데 저 절벽이 선바위는 아니고...
길 바로 옆을 올려다보면 높이 솟은 바위가 하나 있다. 과연 선바위라 할 만하다.
절벽 아래 정자는 남이정이고 이 합수부를 남이포라고 한다. 남이장군이 역모자들을 평정했다는 전설이 얽혀 있어 남이정과 남이포란 이름이 남아있다.
이제 동천을 따라서 청기면 쪽으로 달린다. 대표적인 한국의 정원이라는 서석지를 지나지만 오늘은 들르지 않는다.
지나가는 길에 태극기가 잔뜩 보인다. 영양에서는 청기면에서 3.1 운동이 시작되어 읍내로 이어졌다고 한다.
청기면사무소를 지나면 갈림길이 보인다. 우리는 재산면 쪽으로 돌아서 수비면으로 가야 하니 좌회전해서 911번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이정표에 918번 도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911번 도로 끝에서 918번 도로로 일월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동안은 조용한 시골길이 계속 이어진다.
열심히 달리다가 911번 도로는 918번 도로와 만난다. 수비면 방향은 우회전이다.
다시 31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가 일월면 읍내의 일월 삼거리다. 여기서 표시되어 있는 대로 수비면으로 가야 한다.
많이 달렸으니 여기서 쉬기로 한다. 마침 하나로마트가 있는데 문 닫기 직전이다. 얼른 음료수를 사 온다.
우리가 나가자마자 하나로마트는 문을 닫았다. 다행이다. 이제 수비면까지 13km 남았지만 쉴 때가 되었으니 충분히 쉬어준다.
이제 오늘 여행의 종반부다. 슬슬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빨리 도착하고만 싶다. 계곡과 기암절벽이 있다. 이 계곡은... 아까 입암 쪽에서 봤던 반변천이다.
88번 도로와 만나면 수비면 표시가 있다. 수비 쪽으로 우회전한다. 이 문암삼거리는 영양 근처를 다닐 때 여러 번 지나가게 된다.
이제 수비면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수비면으로 가려면 해발 430m의 낮은 고개인 한티재를 넘어야 한다. 낮은 고개라 해도 힘이 떨어진 종반부에 만나면 귀찮다.
한티재에서 쭉 내려오면 이제 수비면이다. 오늘도 85km 정도 재미있게 잘 달렸다.
오늘 코스는 917번 지방도 일부에 비포장길이 있기 때문에 로드나 도로용 자전거보다는 비포장도 다닐 수 있는 자전거들에게 알맞은 코스다. 고개 내리막길 끝까지 비포장길이라 끌고 걸어가기엔 은근히 시간이 걸린다. 이 변수만 아니라면 서석지도 들러서 쉬었다가 갔을 것이다. 사실 이 917번 지방도를 피하고 싶어도 여기서부터 동쪽으로는 도로용 자전거가 갈만한 길은 바닷가의 경북 동해안 자전거길 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 코스에서는 우회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경북 3대 오지라 하는 봉화, 영양, 청송 중에서 영양을 중심으로 다녀왔다. 차들이 없고 한적한 시골 풍경이 그대로 펼쳐지는 곳이라 자전거로 달리면 달릴수록 맘에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