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낙동강 자전거길은 참 재미없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오늘은 참 오랜만에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린다. 예천군 풍양면에서 출발해서 구미까지 70km 정도의 거리다.
예천군 풍양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낯선 곳일 것이다. 예전에 대청댐부터 출발해서 새재 자전거길을 달려 안동댐까지 달리는 자전거 모임을 만들어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여기 풍양의 작고 낡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오늘은 풍양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출발한다.
풍양은 상주 상풍교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인데 상풍교에서 안동 방향으로 낙동강 자전거길이 읍내를 지나지 않고 빙 둘러가면서 마을에는 들를 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일 것이다. 일단 상풍교 방향으로 달린다.
그리고, 상풍교 앞에서 낙동강 자전거길 좌안으로 진입한다. 낙동강 우안 쪽은 몇 번 달렸으니 안 가본 쪽으로 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더 정확하게는 경천대를 지나가기 싫어서 이쪽으로 간다.
안동댐에서 을숙도까지 자전거길은 370km인데 낙동강은 태백에서부터 시작되니 510km가 넘는 강이다. 여기 상풍교는 낙동강의 대략 3/5 지점이니 중류라고 할 수 있다.
뭔가 애매하게 짧은 비포장 농로를 우회하는 길을 지나면 새로 생긴 듯한 길로 계속 낙동강을 따라갈 수 있다.
우안이 경천대를 통과하는 길이라면 좌안은 경천대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길이다. 경천대는 낙동강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동강 1경이라고 하는데 나는 구문소나 낙동강 비경길, 양원, 분천 쪽이 더 맘에 들기에 딱히 공감되지는 않는다.
경천교 다리가 보인다. 좌안 쪽으로 그대로 가면 비봉산 산길을 달리거나 상주 중동면 쪽으로 우회해야 하니 우안으로 넘어가는 편이 쉽게 가는 길이다.
경천교 건너편은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천교 역시 자전거 모양으로 꾸며져 있다.
상주 자전거 박물관에는 다양한 자전거들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들러본 적은 없다.
남한강에 강천섬이 있다면 낙동강에는 경천섬이 있다. 자전거길은 차들과 관광객들로 정신없는 경천섬 주차장을 둘러가니 도로로 달리는 쪽이 편하다.
자전거 박물관까지 있는 이 동네는 특히나 자전거길 불법 주차가 심하다. 차량 통행도 적으니 그냥 도로로 달린다.
경천섬을 지나면 상주보에서 다시 좌안으로 가야 한다. 우안 쪽으로는 당분간 자전거길 자체가 없어진다.
상주보를 건너서도 자전거길로 가지 않고 한적한 도로로 달린다.
자전거길은 역시나 불법 주차한 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강변에 축구장이나 야구장이 있으면 항상 이렇다. 단순히 길만 막는 게 아니라 경계석이나 시설물 자체를 다 망가트리는 주범들이다.
상주 낙암서원을 지나면 자전거길을 이상하게 둘러놓은 곳이 있는데 그냥 농로로 가로지르면 된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다시 중동교 다리를 건너 우안으로 이어진다. 낙동강 자전거길은 대부분 강 양쪽 중에 한쪽에만 길이 만들어져 있다.
중동교를 건너면 이제 낙동면이다. 낙동강이 낙동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 동네가 낙동강에서 이름을 따서 만든 동네다.
여기서 잠깐 경사가 강한 짧은 오르막길을 넘어야 한다.
낙동강에서 이름을 따와서 지은 지 100년이 조금 넘은 마을이지만 낙동강의 이름을 따왔으니 낙동강 관련 시설 하나쯤은 있을만하다. 내리막길 옆으로 낙동강 역사 이야기관이 있다.
낙동면 읍내 근처에서 낙단보를 만난다. 우안은 낙동면이고 좌안은 의성군 단밀면이니 앞글자 하나씩 따와서 낙단보가 되었다.
이제 낙단보를 건너 의성군 단밀면으로 넘어간다.
낙단보에서 조금 내려가면 낙단교 다리 근처에 음식점들이 모여있다. 추석 때에도 영업하는 식당이 여럿 있는 훌륭한 보급 장소이다. 오늘은 좀 더 달려서 도개면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슈퍼에서 잠시 쉬었다 출발한다.
낙단보 근처에 상주 영천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여기도 하행의 의성휴게소와 상행의 구미휴게소가 마주 보고 있는데 딱 그 사이로 행정구역이 나뉜다. 그래서 자전거길도 의성군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구미시로 넘어가게 된다.
달리다가 자전거길이 작은 하천을 두 번째 꺾어져서 들어갈 때 빠져나가면 도개면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오늘 점심은 고디탕과 돈가스로 먹는다. 고디탕은 경상도식 다슬기국인데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식당 처마에 제비집이 있다. 둥지에서 빼꼼 머리를 내민 제비 새끼들이 참 귀엽다. 새 종류를 싫어하는 지니님도 제비들은 좋아한다. 제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비가 처마에 진흙집을 짓고 제비 새끼들이 똥 무더기를 만들어도 싫어하지 않고 제비가 잘 살도록 신경 써준다. 이를 기억하는 제비들은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시골에는 제비가 많이 산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구미보가 보인다. 구미는 공업도시라 시내가 상당히 큰 동네인데도 아직 시내 건물들은 안 보인다. 여기서 하구 을숙도까지 250km 정도 거리이니 태백에서 나오는 510km 낙동강 물줄기의 딱 중간 정도다.
원래 해평리 쪽에서는 자전거길이 마을을 지나가던 곳이었는데 새로 자전거길 다리가 생겼다. 오랜만에 왔더니 여기저기 작은 변화가 많이 생긴 듯하다.
성수리 쪽에 강변이 온통 까맣다. 여기저기서 연기가 올라가고 소방차들과 소방대원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니 들에 불이 나서 방금 진화된 모양이다. 울진 쪽으로도 산불로 난리인데 전국에서 크고 작은 불이 난리다. 이렇게 인명피해나 재산 피해가 없는 화재는 뉴스에도 안 나온다.
멀리 도시 건물들이 보인다. 슬슬 오늘의 목적지인 구미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산호대교와 구미대교를 건너서 구미 시내에 도착했다.
원래는 구미에서 1박을 하고 공도를 이용해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저녁부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냥 돌아가게 되었다. 해외 자전거 여행 중간에 비가 오는 건 일정 상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빗길을 달리는 건 사양이다.
오랜만에 낙동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것이라 처음 오는 것보다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다. 큰 볼거리는 없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여유있게 달리니 힐링되는 풍경이다. 낙동강이 거리가 길다 보니 일정을 짧게 잡고 도장을 찍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잔잔한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저 낙동강 어딘가를 달린다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도장 찍기를 한 번 완료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장 찍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아서 국토종주 인증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자전거 여행 방법이다. 자전거 여행은 놀러 다니는 것이지 숙제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긴 거리를 애써서 달렸는데 남는게 도장 찍힌 수첩과 허접한 기념품 뿐이라면 자전거 여행이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