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급격하게 더워진다. 아무리 사람이 적응력이 좋다고 하지만 갑자기 더워지는 이런 날이면 컨디션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지니님에게는 너무 쉬운 코스일 수 있지만 오늘은 거리는 조금 긴 편이면서도 쉬운 초보 코스로 간다. 태백에서 출발해서 영월까지 가는 70km 코스다. 길도 어렵지 않고 차량통행도 적고 무려 30km의 긴 내리막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그렇다고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평재와 수라리재 두 개의 언덕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어렵지 않은 언덕길이다.
태백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자주 가는 곳이지만 아침 먹을 곳이 많지 않은 태백이라 툭하면 단체 손님들 때문에 은근히 밥 먹기 힘든 곳이다.
38번 국도인 태백로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아침 10시 이전에는 태백 시내 길인 황지로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반대로 황지로는 태백의 가장 중심 도로이기 때문에 일과 시간에는 붐비는 곳이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지난다. 이곳이 해발 680m이니 태백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700m를 넘는다.
평지처럼 보이지만 태백 터미널부터 시내의 끝인 상장동 입구까지 계속 아주 약한 내리막이다. 신호 없는 사거리에서 차량 통행만 조심하면 페달이 술술 밟힌다. 중간에 감천로와 만나는 곳에서 길이 이상하게 되는데 철길을 건너지 않고 그대로 비스듬하게 직진하는 길로 가면 황지로에서 상장로로 갈아타게 된다.
상장로의 끝은 상장 삼거리에서 38번 국도인 태백로와 합쳐진다. 그전에 상장 벽화마을 쪽으로 빠지면 어평재로 가는 지름길이다.
상장동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지지리골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지지리골은 막힌 길이니 그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이제 어평재 방향으로 3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약한 오르막길이지만 오르막길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에겐 충분히 운동이 될만한 긴 오르막길이다. 요즘 한참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지만 차량 통행이 적은 길이라 자전거로 다니기에 나쁘지 않다.
어평재 휴게소 이정표를 지난다. 아직 1.3 km 더 올라가야 한다. 어평재는 흔히들 화방재라고 하고 공식적으로도 화방재로 알려져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식으로 지은 지명이라 어평재라는 우리 이름으로 부르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해발 936m의 어평재에 가까워질수록 고랭지 특유의 풍경이 점점 드러난다. 아까 태백 시내가 해발 680m이니 어평재는 사실 동네 언덕 수준이자 태백에서 서쪽으로 가는 가장 쉬운 통로이다.
어평재 정상에는 만항재로 가는 삼거리가 있기에 이정표가 나타난다. 300m만 더 가면 어평재 정상이다.
어평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라는 이름답게 화장실을 쓰기도 좋고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있고 매점도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어평재 휴게소에는 제비가 많다. 식당 간판의 모양에 딱 맞게 집을 지어놓은 것이 재밌다. 제비 새끼들은 내가 쳐다보는 것이신기한가 보다.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도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먹는 건 또 열심이다.
충분히 쉬어줬으면 다시 출발이다.
여기서 보통은 오른쪽 길로 만항재를 가지만 오늘은 상동 방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페달질을 할 필요가 없다. 30km에 걸친 길고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구불구불한 길이니 브레이크를 적당히 잡으면서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옥동천 계곡을 따라서 신나게 내려간다.
한참 내려가다 보면 마을 입구가 보인다. 운탄고도의 길이 내려오는 상동이다. 탄광산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축전지식으로 광차를 끄는 축전차가 보인다.
다리 건너 상동삼거리에서 영월 석항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회전해서 상동으로 가면 꽤 길고 가파른 좁은 길로 만항재 가는 길과 만나는 길이다.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상동은 참 조용한 동네다. 태백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 중에 유난히 운행 시간이 더 긴 버스들이 여기 상동을 거쳐 간다.
상동을 벗어나면 다시 첩첩산중이다. 계속 내리막길이니 신나게 내려가면 된다.
길 가에 핀 꽃들도 감상하고 멀리 산을 감상해도 좋다. 지금은 힘이 들지 않는 약한 내리막길이니까.
중간에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에 매점도 있으니 여기서 쉬어가기로 한다. 여길 지날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반대로 영월에서 출발하면 계속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한 번 쉬어줘야 하는 딱 그 자리에 있다.
음료수를 사서 근처 쉼터에 앉아서 마시면서 쉰다.
다시 출발한다. 오늘 날씨가 꽤 더운 편이고 햇빛을 많이 받는 코스다. 그래도 내리막이니 다행이지.
주유소에서 좀 더 내려가면 담배 솔과 솔표 우황청심원의 모델이 되었던 유명한 소나무가 있는 산솔마을을 지나간다. 그대로 지나친다.
녹전교차로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산솔면으로 들어간다. 상동에서 내려왔으니 중동도 하동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여기 산솔면이 예전에 중동이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더 아래로 가면 있는 김삿갓면이 예전에는 하동이었다가 다들 명칭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여기 중동 119 센터나 하동농협 등의 옛 이름의 흔적이 남아있다. 영월군의 7개 면 중에 4개 면이 이름을 바꿨다.
산솔면 마을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31번 국도를 그대로 따라가면 녹전터널과 이목터널을 통과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석항 방향에서 올 때는 내리막길을 빠르게 통과하니 이 터널들을 통과했지만 반대로 빠르게 통과할 수 없는 오르막길 터널은 피하고 싶다. 산솔면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두 터널을 우회할 수 있다. 해발 300m 표지판이 보인다. 해발 936m의 어평재에서 꽤나 많이 내려왔다. 여기 산솔면에서 다시 수라리재를 올라가야 한다.
옛길은 결국엔 31번 국도와 합쳐지지만 터널을 피한 것 만으로 만족이다.
이제 수라리재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수라리재 옛길 입구를 지나가면 수라리터널 500m 앞 표지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옛길을 올라가면 꼬불꼬불한 여섯 커브길이 있는 수라리재인데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라 터널을 그대로 통과해도 괜찮다.
한참 내리막길을 내려왔더니 그리 높지 않은 언덕길임에도 힘들다. 터널 위로 수라리재 옛길이 보인다. 요즘 로드 모임들이 별마로 천문대와 수라리재를 오르고 집에 가는 코스를 보았는데 수라리재는 그렇게 타기 아까운 길이다. 우리는 조만간 MTB로 다시 올 예정이다.
수라리 터널을 지나면 이제 석항을 지나 영월까지 큰 오르막길 없이 달릴 수 있다.
수라리재에서 내려가면 석항에 도착한다. 석항도 아직 해발 400m이다. 석항에는 식당과 편의점이 있으니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오르막길 한 번 올라갔다 왔으니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쉰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니 땀은 나는데 오르막길 2번 오르는 게 거의 전부이니 힘을 많이 쓰진 않았다.
영월에서 태백 가는 길에 연하계곡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 여기도 연상리와 연하리가 있다. 연상리 쪽으로 가면 38번 국도를 피해서 영월까지 샛길로만 갈 수 있다. 태백 근처에서는 38번 국도를 얼마나 피해 다닐 수 있는지가 코스를 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깊은 산속의 좁은 골짜기에 큰길, 샛길, 기찻길, 계곡물이 모두 모이다 보니 다리나 건널목이 계속 있다. 기차는 드문드문 다니고 대부분의 차들은 큰길을 이용하니 샛길은 조용하다.
연하 계곡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영월읍에 진입하게 된다.
길이 조금 헷갈릴 수 있는 곳도 있지만 38번 국도에만 올라가지 않으면 된다.
깊은 산골짜기 안을 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미 한참을 내려와서 해발 고도는 상당히 낮다. 영월읍 읍내는 해발 200m 남짓이고 앞에 보이는 산들의 가장 높은 봉우리도 해발 1,000m가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큰 고개를 넘지 않고 올 수 있는 영월의 석항 예미 구간까지는 산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별마로 천문대나 동강 어라연 쪽으로 가는 다리인 동강교를 지나고 영월역도 지나서 영월 읍내로 들어오게 된다. 해발 200m 정도니 오늘 최고 높이인 해발 936m 어평재에서부터 한참을 내려온 셈이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가야 한다. 영월은 동강 다슬기 요리가 유명하지만 우리는 보통 오징어 볶음을 먹는다. 예전보다는 맛이나 양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음식 자체도 미묘하게 맛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여행기에는 자세한 맛집 소개는 하지 않는다.
점심도 잘 먹었으니 이제 영월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노선이 많지 않은 곳은 코로나로 인해서 노선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확실하게 노선 시간표를 알아둬야 한다.
오늘 코스는 간단히 말하자면 날로 먹는 코스다. 오르막길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운동이 되지 않아 실망할 코스이고 오르막길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이라면 약간의 수고로 긴 내리막길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중간에 풍경이나 볼거리도 은근히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