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뭐하세요?

1장 다섯.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by 스쿠피

아무리 바빠도 멈출 수 없는 일이 있다. 아무리 아파도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써 보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글쓰기는 내게 그렇다.

‘괜찮아. 이 기분, 이 생각, 써 보면 다 별일 아닌 거 알아. 쓰지 않으면 계속 너는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겠지. 그러니, 나를 너를 써 보이겠어. 네가 매번 나타날 때마다 나는 너와 거리를 두려 해. 너도, 나도 잘살아 보자.’


새벽마다 지난 하루를 복기하며 오늘 하루는 어떻게 펼쳐질지를 눈감고 상상한다. 무엇에 진짜 감사해야 하는지,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설레게 하는지. 처음에는 주체 못 할 만큼 어색하고 억울한 감정만 가득했다. 지금은 찰랑거리는 감정이 또 나를 휘몰고 지나쳤다는 낭패감마저 다시 건져 되돌아본다. 나 살아 있구나. 남들이 겪는 거, 나도 다 겪으면서 살고 있구나, 한다.


다시 생각해도 내 삶에 ‘번아웃’이 없었다면 지금의 처세는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달리다 지쳐 쓰러져 본 자만이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설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 귀하게 터득한 내 처세가 이렇게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음에도 처세는 처세일 뿐. 중간 항로의 커다란 내적 지진 상태에서 마음의 나침반을 다시 조율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리뉴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쌓아온 게 적지 않은 나이이다. 당연히 세공이 필요하다. 버려야 할 게 많고, 비워야 할 게 많다. 때에 따라서는 인간관계마저도 그렇다.

언제까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나. 분명 하루가 쌓이면 1년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려 애쓰며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을 품어 보아도 당장 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자주 흔들리나보다. 또다시 나를 돌아보는 일도 고단하게 느껴질 즈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 리뉴얼 작업은 나머지 몇십 년을 위한 것이어야 하나. 살아온 만큼 장기전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은퇴 및 노후 생활까지 감안한다면 언제부터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가 40~50대라면 그 끝은 몇 살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2023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6세라고 한다. 1970년에 62세 수준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20년이나 늘었다. 해외에서는 스위스,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3위를 차지한 것에 주목하며, 한국 의료 기술의 발전을 극찬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인의 최대 사망 원인인 암의 생존율도 높아져서 외국인 ‘의료 관광객’도 5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정작 한국인들은 이 소식에 웃을 수 없다. 한 금융기관과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연령도 늦어지고, 취업 연령도 늦어졌으니 당연히 퇴직 준비 기간도 짧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10명 중 6명이 은퇴 생활 준비가 부족하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건강보다 ‘돈’을 꼽았으며, 그 노후 준비 자금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이라고 답했다.


자료 통계가 깔끔하게 보여주는 수치는 씁쓸하지만 정확하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도 돈이 없는 사람은 건강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들은 ‘돈이 있는’ 외국인들이다. 한국인들이 ‘은퇴 준비 인식이 부족하다’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여유롭게 누리려는 핑크빛 인생 구상이 아니다. 또다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존 걱정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한 여유가 없다. 오늘을 유지하는 데만도 급급한 것에 흠뻑 길들어버린,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 평균 수명보다는 건강 수명이 중요하다고 한다. 혹자는 대형 병원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오랜 장수의 비결이 ‘의사에게 자주 찾아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각종 주식이나 부동산, 금융상품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저 마케팅일 뿐이니 맹신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보다 중요한 것은 ‘돈 들 필요 없는 루틴 만들기’가 급선무라 했다. 더러는 얄궂게도 제2의 자아를 찾았다며 시작한 일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노후를 단명시키기도 했으며, 별다른 방도 없이 노인복지센터나 문화센터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냄으로써 아까운 노후의 시간이 ‘새로운 무료함’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내게 그리 먼 미래의 일도 아닌데 은퇴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고 있자니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은퇴 준비의 적기가 아닌가 싶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함부로 타인의 경험을 통계 내어 흉내 내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모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이다. 그녀는 62세에 쓴 <노년>에서 사회적으로 생산성을 상실한 노인을 폐품 처리하는 상황을 ‘침묵의 공모’를 깨기 위해 쓴다고 표현했다. 700쪽을 훌쩍 넘는 벽돌 책에서 그녀는 철저하게 노년의 외면성과 내면성을 다각적으로 파헤쳤는데, 골자는 이렇다. ‘노인의 지위는 결코 자신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노인들의 운명은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이해관계와 목표에 따라 수동적으로 결정되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처해 있으며, 인간의 말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자신들 역시 늙는다는 ‘깊은 자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수많은 타인들의 은퇴 사례는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더 힘들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미래에 내가 어떤 인간일 것인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받아들이기가 수월할 텐데. 내가 나이 들어가는 흔적이 타인에 의해 발견될 때마다 내 안에서는 좀처럼 그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고, 얼마나 코앞의 일들에만 연연해 왔는지가 보여 새삼 부끄러웠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생산성을 잃은 빈털터리 노인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을 때, 지배 계층은 노후 연금 문제 등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충분히 노후를 보낼 여유가 있는데도 자식들을 경제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한 경우, 혹은 결혼 이후까지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연금을 털어야 하고, 손자‧손녀들 학원비라도 챙겨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정설은 인간다운 말년과 얼마나 먼 이야기인가. 방대한 자료 끝에 그녀가 내린, 노년에도 인간답게 남아 있기 위한 사회의 모습은 이렇다.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 …(중략)…인간을 온통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를 재창조해야 한다.”


뜨끔했다. 그녀의 예리한 문장들이 내 허전한 노후 생각의 공간을 활개 치며 도끼질을 해댔다. 이제껏 나는 내 나머지 반쪽 삶을 타인의 경험담에 함부로 빗대어 쇼핑하듯 구경하는 마음이었구나. 타인의 질병이나 가까운 이의 죽음조차 ‘완벽한 그들의 것’으로 보았구나. 가까운 내 모습이라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나는 아직 내 존재를 바라볼 준비가 안 되었구나. 어떻게 죽고 싶은지도 모르고 있구나. 잘 늙을 생각도 안 하고 싶구나. 아직 늙어보지 않았으니 마음 편히 읽어야지 했다가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론 부분에 이를수록 그녀의 표현은 칼날처럼 예리했고, 직설적이었다. 에필로그 부분은 슬프다 못해 처참한 기분이 들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타인의 은퇴 이후 삶은 그들 것이다. 그들의 경험 수치이고, 깨달음의 수치이다. 반면 나의 노년은 내 상태에서 경험한 것들에 기인할 터이다. 연금 저축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보다 내 고유한 존재의 깊이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내 미래에 대해 좀 더 자유로운 상상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이다.


당신의 은퇴 준비는 순조로운가. 혹시 차곡차곡 준비해 오다 누군가 쓰러지셨다거나, 보증을 잘못 섰거나, 투자가 잘못되어 부부 싸움을 크게 한 일은 없는가. 다 키웠다 생각한 자식들이 당신의 노후 자금 마련에 발목 잡는 격은 아닌가.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은 잘 수습하며 견디고 있는가. 그런대로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는가. 나의 글쓰기가 요행 없이 느리게나마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려 하듯, 당신의 노후 준비도 연륜과 함께 순탄하기를 바란다. 우리들 역시 늙는다는'깊은 자각'과 함께 서로에게 건투를 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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