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진짜 힘든 이유

1장 넷. X세대는 건재하다

by 스쿠피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으면 ‘이렇게 예의 없을 수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는 가르치면 학생이 태도를 바꿨다. 이제는 전혀 안 된다. 20년이 무색하게 교육이 재미없어졌다. 10년 전에는 잘 가르친다고 상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솔직히 차세대 리더로 우리 세대를 건너뛰고 MZ세대를 주목하잖아. 위에서는 시키면 다 되는 줄 알아. 정작 중간관리자인 우리는 직원들한테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꼰대’ 소리밖에 못 듣고 말이야. 승진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속상할 때가 많아.”


굳이 세대를 나누어 하소연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알 수 있었다. 그들 이야기가 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겪는 서운함과 불편함이 절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위 내용은 한국 의대 학술회에서 진술한 몇몇 의대 교수들의 말이기도 하고, 일반 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의 고충을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하다. 진술자들의 공통점을 굳이 살펴보자면, 소위 한국의 낀 세대인 ‘X세대’의 솔직한 심정이다. 2021년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생, X세대는 1964~1979년생, 밀레니얼 세대는 1980~1996년생, Z세대는 1997~2004년생을 말한다. 게다가, X세대는 국내 30대 그룹의 197개 상장사 전체 임원 중 47%를 차지하는 세대로 1970년대생이 주축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이 세대가 지금은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윗세대로부터 철딱서니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에 열광하던 시절. 그러다 IMF를 직격탄으로 경험한 세대. 개성은 누구보다 빵빵했으나, 경제적 위기의 현실적 처세에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숨 가쁨과 함께, 우리는 나이가 들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X세대 꼰대’ 임을 자처하지만,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다. 어느 동료는 내게 귀띔하기를, ‘쟤네, 가만 보면 돈 되는 것만 쫓아 일한다고. 수당이나 여비 지급에 얼마나 혈안인지 봐봐. 돈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세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일하던 열정이나 몰입이 그 세대에게는 미련함으로 비치는 모양이야.’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더 큰 그림을 보고 마음을 내주는 행위가 이렇게 묵살되는 분위기라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서서히 그들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듣고 보니, 그랬다. 관리자는 항상 관리자의 목표 달성치가 있다. 보여야 하는 성과가 있어야 하고 사건 사고나 민원은 최대한 나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중간 관리자인 우리 세대는 관리자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부원들을 챙겨 팀워크를 이루어나가야 하는데, 솔직히 MZ세대가 너무 과하게 각광을 받았다. ‘90년대생이 온다’느니, ‘Z세대의 유행어 모음집’이라느니 하는 콘텐츠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업무적 사고와 행동 양식에는 ‘대화’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했다. 한 번도 매뉴얼 따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해 온 내게, 마치 당연한 권리인 듯 그 매뉴얼 줄 수 없냐는 카톡이 온다. 문서 양식 하나를 기존의 것을 참고해서 편집해 줄 수 있느냐는 말에 ‘5분 이상은 거기에 시간을 들여야 하잖아요.’라며 거절하고 만다. 어디 MZ 뿐인가. 그 와중에 큰 그림을 그리며 누누이 소통하면서 일을 추진한다 생각했는데, 결정적 순간에 공을 낚아채는 관리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세대 안에 숨어 버린 개인의 기질 문제에 가깝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문제를 세대에 기대어 문제를 희석화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이는 ‘링크 세대’라 해서 자신은 M도 아니고, Z도 아닌지라 이런 세대별 구분이 참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직장에서만큼은 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어 서로를 바라봤으면 한다고 했다. 참으로 일리 있는 말 아닌가.


X세대의 대표적 고충으로 흔히 거론되는 표면적 문제는 위로는 부모 부양, 아래로는 자녀 양육, 본인의 직장에서는 승진에서 밀려난 자존감 하락을 비롯하여 정작 자신의 노후 대책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등을 들 수 있다. 이 정도면 좀 쉬어갈 만도 한데,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고, 쉰다 해도 마음은 더 불편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많은 X세대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직장에서 적당히 MZ세대 눈치 보면서 상사인 자신이 야근하는 일이 더 많았고, 퇴근 후 가정에서도 아내의 갱년기와 아들의 사춘기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껏’ 행동하는 가장들이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 중년이지만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세대 역시 X세대라는 것과 그들의 행복지수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은 다른 측면의 문제를 보여주었다. 바로 ‘스스로 원해서 혼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 되니, X세대 중년의 표면적인 문제는 통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문제는 ‘각자도생’을 내면화한 갑갑한 사회체제와, 자본주의의 병폐를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듯 돈의 권력에 순응해 온 현대인의 습성 때문은 아닐까. 정치도, 경제도, 내 아슬아슬한 중년을 풍요롭게 해 줄 리가 없다. 어떤 정책이나 시설, 프로그램이 생기더라도 더 근원적인 것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쳇바퀴처럼 반복될 뿐이다.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게 펼쳐진 갖가지 까다로운 패를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쉬는 것도 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졌다고 할 수 없다. 저 귀한 ‘X세대의 자존심 높이기’ 관련 기사가 무척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이유 도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부처를 직접 만나 이야기한다. 아무리 당신이 진리의 말씀을 해 주셔도, 죽음에서 해탈을 겪으셨어도, 수십 만 명 가운데 혼자 체험한 그 비밀은 가르침 자체 안에는 들어있지 않다고. 그런 이유로 자신은 편력의 길을 가려한다고 말이다. 결국, 싯다르타는 삶의 온갖 경험을 다 겪고 나서야 스스로 지혜를 얻는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인 고빈다에게 고백한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말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X세대 중년이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끼어 전 세계적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버벅거리는 중고 컴퓨터 취급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X세대가 ‘그렇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러면 이제 다른 패를 꺼내 들 때란 말이지.’ 하며 태세 전환할 지혜만 잘 갖춘다면,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가는 일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부처와 같은 이유로 편력의 길을 나설 용기는 없었지만, 세팅된 환경에서 어찌어찌 살아오며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동등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각자의 삶의 형태에서 깨달음의 순간은 스스로 구해야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매뉴얼 없이 맨땅에 헤딩이다. 차라리 어쭙잖은 낡은 매뉴얼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끼자. 관습에 얽매이기 싫어 개성을 부르짖었던 그 소년과 소녀들은 어느덧 노쇠한 부모님 진료를 챙긴다. 커가는 자녀들을 위해 무조건적 희생이 아닌 워라밸을 부르짖으며 여기까지 왔다. 가끔 깜빡깜빡 말이 헛나오긴 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에 있어서 어느 세대보다 통찰력과 이해력이 뛰어난 노련한 뇌를 지녔으니 굽은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어보자. 공들인 시간만큼 방법은 드러날 것이다.

중년이 진짜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좋은 카드를 받아 게임을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다.

나쁜 패를 손에 쥐고도 어떻게 게임에서 이길 것인가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재미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아주 오래된 가르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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