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땅을 파려고 해요》

1장 셋. 중년에 올라오는 감정

by 스쿠피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저)라는 동화책이 있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땅파기를 시작하는 샘과 데이브. 언제까지 파야 하느냐는 샘의 말에 데이브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사명’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갖은 일을 겪은 후, 마침내 둘은 말한다.

“어마무시하게 멋졌어.”


당시 별생각 없이 동화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커다란 보석 하나가 그들이 파기 시작한 땅 바로 옆에 그려져 있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끝내 보석이 있는 자리는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두 소년은 꽤 진지하게 탐구해 가며 땅굴 파기 여정을 무사히 마친다. 보석을 캐는 일이 사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회화한 내가 당연히 짠하고 보석을 캐는 순간을 기대했던 것이 우스웠다. 그래. 보석이 뭐 별 건가. 땀 뻘뻘 흘리면서 땅굴 파 봤으면 된 거지. 그런 거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 지겨움. 권태. 중년이라면 머리로는 알면서도 일상의 소중함을 만끽한다는 게 쉽지 않다. 오히려 유년 시절 누구나 품었을 그 ‘장래희망’이 크나큰 신화에 지나지 않았음을, 간혹 그 신화창조의 산증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끝은 찬란함보다 씁쓸함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상사 아들이 말단 사원 아들을 건드리면 억울한 문책을 당해도 별수 없음에 분하고, 실컷 일하면서 아이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정작 아이는 정든 조부모만 찾으며 사춘기에 반항하거나 가출을 시도한다고.

이래저래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해 온 사람일수록 좌절의 경험은 깊고, 쓰라릴 것이다.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해서, 혹은 올라가면 올라간 대로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려 해도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다시 판을 정리하기에 앞서 지금 딛고 있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심각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좌절감과 낭패감, 피로감으로 흔들리는 뿌리의 진동, 뽑을 것인가 견딜 것인가.


융학파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홀리스는『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제임스 홀리스 저)에서 중년이라면 새길만 한 주옥같은 말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는 이러한 중년의 심적 지진 상태를 ‘중간항로’라고 지칭했다. 이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닿기 전에 거치는 서해안과 서인도제도를 연결하는 대서양 횡단 항로에서 따온 상징적 의미의 용어다.


그는 중년이 되면 사회적 관습대로 살아온 나를 1차 성인기로 보되, 진짜 자기가 아닌 ‘거짓된 자아’를 쌓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이었는지 깨닫는 순간을 2차 성인기에 진입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높은 연봉, 좋은 집, 학벌, 스펙을 쌓아 이룬 ‘성공한 인생’이나 좋은 딸, 아내, 엄마, 며느리 등과 같은 ‘바람직한 인간상’을 추구하는 삶은 기대치가 무한대라 스스로 ‘이건 아니잖아!’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적 관습이 일정 부분 지켜질 필요는 있으나, 사회가 개인에게 거는 기대가 때로는 무지막지한 영혼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었다.


흥미로우면서도 진정한 사이다 발언 아닌가! 더군다나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이후, 사회제도가 장악하던 각종 심리적 권력은 급속히 개인의 역량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이다. 내 개인의 도덕률이 만인에게 존중받아야 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내 인생은 단 하나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내게 온 고통, 이 중간항로의 심적 지진 상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고심 끝에 이해해야만 진짜 자기인 2차 성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책에서는 1차 성인기에 다져진 거짓된 자아를 한 번 죽이고, 다시 태어나야 한단다. 그래서 이를 의식적 충격-죽음–재생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내게도 조짐은 있었다. 뒤늦게 불붙은 향학심이 자칫 부모님께 불효가 될까 싶어 더 큰 도전을 스스로 체념했던 기억, 내 인생 최고의 성취감에 흠뻑 젖어있을 때 축복은커녕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았던 기억, 그렇게 거짓 자아의 틀 속에서 하나씩 뭔가를 알아갈 때마다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이 더 크게 다가와서 당혹스러웠던 기억.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5년에 한 번씩, 10년에 한 번씩 매우 다채롭게 중간항로의 파편들을 겪다 오늘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궁금하다. 당신은 잠을 잘 자는지,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드는지, 별 것 아닌 것에 불안해하는지, 화는 얼마나 자주 내는 사람인지 말이다. 융은 우리 모두 신경증적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 진짜 고통은 아니며, 오히려 진짜 고통을 피하고자 겪는 증상이자 신호라고. 즉, 이 신경증은 현실의 나와 스스로 원하는 내가 다른 데서 오는 괴리감에서 기인하므로 ‘새로운 심리적 조정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날 뿐이다. 당신이 신경증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이러한 심리적 조짐조차 못 느낄 정도로 무기력해진 경우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심리적 조정을 이루어 안정을 이루었거나.

고백하자면, 나는 위의 두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무기력해질 만큼 무디지도 않고, 심리적 조정을 이룰 만큼 정서가 안정적이지도 않다. 신경증은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다 갑갑해서 주변을 더듬는 정도라고나 할까.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을 잘 모르더라도, 실천해 보는 자세는 중요하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다가 하나씩 메이크업을 지워가며 내 자아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 불편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딸, 아내, 엄마, 직장인 모두 걷어 내고 나면 뭐가 남지?


<모아나>에는 모아나가 혼자만의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이 있다. <겨울왕국 2>에서는 엘사가 두려움을 이겨내며 성난 파도에 뛰어들기 직전의 심호흡을 느낄 수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저주를 풀기 위해 숨죽인 내면을 스스로 발견하는 소피가 있다. 모든 동화책과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소재는 힘에 못 이기는 미약한 존재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다룸으로써 중년의 어른에게도 대입 가능한 ‘변화의 가능성’을 화두로 던진다.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도 모두 각자의 몫이다. 여차하면 내 인생도 별수 없이 역사의 무리에 묻힐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주어진 시간이나 효율을 따질 때가 아니다. 내면이 흔들린다는 걸 알았으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방향을 틀어보는 행동부터 해야 할 때다. 뿌리를 뽑을지 견딜지는 움직인 후에 판단하자.


샘과 데이브는 무럭무럭 자라 진짜 자아를 찾는 땅을 파게 될 것이다. ‘중간항로’에 해당하는 구간을 맛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나와 함께 당신 지분의 그 땅도 후회 없이 힘껏 파 볼 생각 없는가. 탐험해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대사가 있다.


“내 인생도 어마무시하게 멋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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