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다
“... 생각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요즘 시원찮게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평안했으면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소망은 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오다 멈춰보니, 내 앞에는 지나온 경험들만큼이나 앞으로 겪어내야 할 경험들이 산재해 있다는 걸 알았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해본다.
워킹맘으로 달리고 달려 힘겹게 멈춰보고 깨달은 것은, 앞으로 남은 날들 역시 만만치 않겠다는 사실이다. 어르신들의 병환과, 동료들의 때 이른 죽음, 권태기와 갱년기, 조만간 사춘기 초입 단계인 자녀들을 바라보며, 정확히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다시 궁금해졌다.
혹자는 남들처럼 공부했고, 결혼했고, 아이들 있고, 직장 있으니 무슨 걱정이냐 물어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년에 들어서니 환경에서 오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건 오히려 시간이나 존재의 문제와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묵직하면서도 다채로운 문제들은 마치 그 끝을 알 수 없는 '잭과 콩나물'의 나뭇가지처럼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데, 나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부터 헤매고 있지는 않나. 그냥 저대로 놔두면, 나 역시 되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더 나아지지 않는 걸까?’
문득,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 중’인 내가 물리적인 흔적으로 남긴 것은 자녀들뿐이겠구나, 싶었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무엇을 남기려 하나. 돌아가신 아버지는 무엇을 남기셨나. 아니, 내가 무엇을 남길 만큼 ‘내적 유산’이라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한 사람이었던가.
이 책은 그래서 나왔다. 여전히 일상에서 반복되는 나만의 의문점들, 한 번쯤은 중년에 접어든 이들이 인생의 중턱에서 진지하게 마주해 봄 직한 생각들을 끄집어내는 마음으로. 이를 테면, 중년이 왜 더 지치고 힘겨운지, 아이들한테 내가 지금 어떤 부모인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지, 남아계신 어르신들에게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와 나의 노후는 어디까지 기획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1장에서는 중년의 의미와 이 시대 중년이 힘든 진짜 이유를 살펴보고, 2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시기를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나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 4장에서는 3장을 위해 다져야 할 마음가짐을, 5장에서는 좋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 기꺼이 격려하는 마음을 실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꺼이 멈춰 서서 잡아 움켜 쥔 짧은 간병휴직기간 아닌가. 앞으로 틈틈이 엄마와의 시간을 누리면서 교감할 수 있는 날들이 남아 있다는 것도 내게 주어진 기회임을 잘 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우리 모녀 갈등의 실타래도 닳고 닳아, 다시 시간 앞에서 녹아 없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때는 회한스럽고 가슴이 먹먹할 만큼 아팠지만, 언젠가는 그저 필요했던 경험으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