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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날, ‘암’이라는 이름의 문을 열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by 정유선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분주한 아침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겨우 숨을 돌린 찰나. 익숙한 하루에 낯선 피로가 불쑥 끼어들었다. 단지 피곤한가 보다 넘기려 했지만, 마음 한편을 조용히 긁는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시죠.”


그렇게 나는 광주의 한 대학병원 문을 열었다. 차가운 복도, 불안한 침묵, 그리고 조심스럽게 권유된 조직검사. ‘설마 아닐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일주일 후 결과는 모든 희망을 꺾어놓았다.


“악성 종양입니다.”


그 한 문장이 내 삶 전체를 무너뜨렸다. 세상의 소리가 꺼지고, 시간은 멈췄다.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낭떠러지 끝에 선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비를 맞던 그 순간, 얼굴을 타고 흐르던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후로의 시간은 말 그대로 ‘버팀’이었다. 항암치료는 육체와 정신을 끝없이 갉아먹었다. 식욕도, 잠도 사라졌다. 머리카락은 한 줌씩 빠지고, 거울 앞에 서는 일이 공포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파야 하나?’ 매일이 고통과 싸움이었다.


그러나 살아야 했다. 줄어든 암세포를 확인한 뒤 수술대에 올랐다. 간절히 기도하며 마취에 몸을 맡겼고, 눈을 떴을 때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겨우 다시 숨을 돌릴 무렵 또다시 들려온 한 마디.

“재발입니다.”


더 독한 약, 무너지는 체력, 말라가는 희망.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건넨 책 속에서 문장을 발견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 문장은 단지 글이 아니었다. 딸아이의 두 손으로 전해준 사랑이었다. 나는 그 사랑에 붙잡혔다. 노트북을 열고, 작은 스피커를 틀고, 병동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기 시작했다. 비록 느린 걸음이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참 따뜻했다.


용기 내어 라디오 방송국에 사연을 보냈다.


“이곳은 암 병동입니다. 투병 생활을 조금 더 따뜻하게 나누고 싶어 사연을 씁니다…”


그 사연이 전파를 탔고, 병실은 작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병실 가족’이 되었다. 반찬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다정히 물었다.


“어디 계세요?”

“걷기 운동 중이에요.”

“그래요, 천천히 들어오세요.”


나는 병원이 아닌 세상 속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새벽이면 링거줄을 끌며 병원 복도를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사람들이 사랑을 보내왔다. 교수님은 텃밭 채소를 건네주셨고, 친구들은 어성초 물, 소금, 상황버섯을 보내주었다.

“홍시가 먹고 싶다”는 말엔 진주에서 아이스 홍시가,

“입맛이 없다”는 말엔 5년 묵은 김치가 도착했다.


그것은 단지 음식이 아니었다. 사랑이었고, 위로였고, 내가 다시 살아갈 이유였다.


암이라는 문은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도 열어주었다. 그 너머엔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아주 오래 잊고 있던 진짜 나가 서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지 않고 나를 살리려 했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들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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