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8
6월의 고추는 풋고추다. 빨간 고추를 얻기 위해서는 더 더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리면 다 귀엽듯, 어린 작물은 다 연하다. 엄마는 풋고추를 따먹는 맛에 푹 빠졌다. 고추는 정리해주지 않으면 가지가 점점 옆으로 퍼지기도 한다. 고추가 실하게 열리기 위해서도 가지 정리는 필수적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원래 사람도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게 더 많은 법처럼.
정리한 가지에서 잎을 따서 고춧잎나물을 무쳐먹는다. 나는 항상 고춧잎에서도 미세한 고추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나무에서 나기 때문일까. 고추가 더 자라고 잎이 연하지 않으면 간장에 고춧잎을 재워서 고춧잎장아찌를 담가 먹을 수 있다.
정리해야 하는 게 있는 반면, 정리하면 안 될 것도 있다. 바로 호박잎이다. 호박잎은 호박이 다 열리고 나서 따야 한다. 호박잎을 미리 따면 호박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는 호박잎을 아주 좋아했다. 학창 시절, 외갓집에서 호박잎을 보내주면 엄마는 항상 우렁이와 감자, 양파 등을 넣고 강된장을 만들었다. 삶은 호박잎에 강된장을 넣고 쌈을 싸 먹기 위해서다. 중학생 입맛 정도 되는 나는 강된장도 별로고, 물기 있고 축 쳐진 호박잎을 싸 먹는 것이 귀찮았다. 엄마가 싸주면 한번 정도 받아먹고는 했다. 호박은 아직 양파 정도 크기로 밖에 열리지 않아서 엄마가 강된장을 끓일 날은 한 달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엄마는 세상에 언니와 나,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정반대인 점이 많았다. 언니는 사교성이 있고, 마당발이다. 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게 어려운 사람이다. 나는 언니와 연년생으로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언니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예쁨을 받았다. 언니는 내 동생에게 문제집을 주라고 선생님들에게 당당히 요구하기도 했다. 언니의 오지랖에 교무실로 끌려가 문제집을 받아오기도 했다. 언니는 학원을 가기 전에 배가 고프면, 선생님한테 사달라고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친구의 아내분도 언니를 보고, 언니 같이 애교 있는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언니와 전혀 다르게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워하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더 어려워한다. 서른이 되니 친구들은 서로 바빠서 자연스레 정리가 되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나의 인간관계는 매우 좁아졌다. 활동하는 단체 대화방도 단 2개, 한 달에 약속이 있는 날이 하루 이틀에 불과하다.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언니는 평일에도 약속이 많아 피곤해한다.
회사에 다니니 내 성격이 너무 힘들다. 회식이 끝나고 같은 방향인 다른 팀 대리님과 택시를 같이 탔는데, 택시비보다 많은 돈을 주고 먼저 내리셨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냥 받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보답을 하고 싶은데 번호도 못 물어봤고 말을 꺼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밥 사드린다고 찾아가.” 언니는 간단하게 생각하는 걸 나는 너무 어렵다. 찾아가는 것도,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도, 밥을 같이 먹는 것도 나에게는 모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이럴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다가오는 사람도 벽을 치기 바쁘니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언니한테 “나도 붙임성이 있고 싶어.”라고 말했지만, 언니는 “있어서 좋을 거 없어.”라며 되받아 쳤다.
가족들에게만 쿨한 언니는 붙임성 있어서 받는 피해가 많았다. 언니는 자기 전에 ‘내일은 웃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언니는 자신이 쉬워 보여서 사람들이 막대한다고 생각했다. 잡일은 다 언니 차지가 되고, 언니는 ‘~씨’에서 ‘~야’가 되었다. 언니의 동료들은 언니의 물건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그래서 언니는 회사에서 내 가시 돋친 성격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정리하고, 언니는 모든 사람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그래서 서로를 부러워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관계에 있어서의 정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알기 어려운 것이다.
애호박과 가지는 매일매일 너무 많이 열려서 혼자 먹기 힘들 정도이다. 하루 이틀이면 너덧개 따먹을 게 생겼다. 아침과 점심에 크기가 다른 게 보일 정도였다. 엄마는 “이게 바로 호박이 넝쿨째 열린다는 건가 봐’”라고 말했다.
엄마는 가지와 애호박으로 나물도 해 먹고, 특히 애호박으로는 전도 부쳐 먹고 된장찌개도 끓여 먹었다. 밭에서 매일 따다가 먹는 야채는 단맛이 강하다고 했다. 설탕을 넣지도 않았는데, 나물이 달다고. 엄마는 야채가 단 것은 야채를 썰 때 보이는 진액 때문 같다고 했다. 도시에서 야채를 사다가 썰면 보이지 않은 진액이었다. 뭐든 바로바로 먹는 신선한 음식이 맛있다.
큰외삼촌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여기저기 자랑했다. 어느 날은 부여에 내려와서 가지와 애호박을 잔뜩 따갔다. 엄마는 너무 새끼도 다 따버리는 바람에 이번 주 내내 먹을 게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큰외삼촌이 가지와 애호박을 따가고 나서 비가 왔다. 엄마는 벌과 나비가 일하지 못해서 열매를 맺는 게 없을 거라고 했다. 비가 올 때는 작게 열매 맺은 작물이 쑥쑥 크는데, 작은 것도 다 따버렸으니 클 것도 없다. 너무 작은 채소는 맛도 다 들지 않았다.
큰외숙모도 너무 작은 게 끼어왔다며 큰외삼촌을 타박하셨다. 그것도 다 나눠주고 먹을 것이 없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여러 사람에게 나눠줄 생각에 성급하게 채소를 수확해 간 것이다. 큰외삼촌은 자랑하는 맛에 농사를 짓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채는 오이이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도 많다던데, 나는 오이로 만든 건 대부분 좋아한다. 오이 무침, 오이소박이, 오이냉국, 오이지, 심지어 오이를 무치기 위해 소금에 절여놓았을 때도 좋아한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오이를 소금에 절여놓으면 내가 먹지 못하게 감시해야 했다고 한다.
오이도 주렁주렁 열렸다. 엄마는 나에게 계속 오이김치를 담가줄 테니 내려오라고 재촉했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내려올 때쯤에는 오이가 나지 않게 될까 봐 걱정했다. 오이김치는 배추김치처럼 오래오래 먹는 것이 아니라 금방 물러버린다. 게다가 나는 바로 담근 오이김치를 좋아했다. 아삭아삭한 겉절이 느낌을. 엄마는 혼자서 즐기는 삶이 좋으면서도 아까워하고 있었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엄마는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사진을 찍어 보낸 오이는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새우잠을 자는 듯 동그랗게 말린 오이도 있었다. 엄마가 예뻐하는 오이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불행히도 나는 휴가 쓰는 데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고, 휴가는 결국 아꼈다가 똥이 되고는 했다. 이번에는 꼭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눈치만 보다가 6월 말에는 눈병이 걸려서 내려가지 못했다. 점염성이 있는 결막염이었기에 회사에도 나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걸리면, 큰일이기에 휴가 계획은 미뤄야 했다.
엄마는 나를 기다리다가 6월에만 오이김치를 두 번 담갔다. 오이지도 만들어 먹고, 오이냉국도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오이는 노각이 되라고 따지 않고 남겨두었다. 노각은 참외랑 비슷하게 탄탄한 식감을 가진다고 한다. 같은 채소인데 따지 않고 더 놔두면 맛도 영양도 달라진다. 엄마는 “노각이 몸에 그렇게 좋데”라며 기대했다.
6월이 되자, 엄마의 상추에는 꽃이 피었다. 개인적으로 상추꽃은 예쁘지 않았다. 쑥갓의 꽃은 노랗고 아기자기했다면, 상추의 꽃은 적상추 색상에 꽃인지 풀인지 헷갈리는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꽃이 피었다는 건 상추를 충분히 따먹었다는 증거다. 이제 상추는 더 이상 쌈을 싸 먹기에 적합하지 않다. 질기고 억세다.
대부분의 야채는 나이가 들면 질기고 억세지나보다. 작물처럼 사람도 점점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고 어른스러워진다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진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회사도 다니면 다닐수록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 신입 때는 누구나 다 친절하지만, 점점 까칠해지는 것 같다. 까칠한 내 모습을 보면, 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아니라 질기고 억센 사람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내 30대는 노각보다는 상추꽃에 가깝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전화했다. 내가 살림을 하다가 엄마에게 전화하듯, 엄마의 멘토는 외할머니이다. 외할머니는 적당히 따먹고 새 상추씨를 뿌리라고 했다. 질겨진 상추는 데쳐서 나물을 해 먹으라는 조언도 했다. 엄마는 상추 나물을 처음 들어봤지만, 엄마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상추를 데친다니. 상추는 겉절이를 해도 금방 물러버리는데 데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많이 자란 상추는 끓는 물에도 쉽게 지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는 상추를 데쳐, 시금치처럼 무쳤다. 데쳤는데도 쌈 상추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상상이 되지 않지만, 엄마가 한번 이상 해 먹지 않았다는 것은 별로 맛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꽃이 핀 상추를 포기하고 새로 창고에 있던 상추씨를 뿌렸다. 상추 없이는 도저히 밥을 먹지 못하겠다면서.
엄마의 첫 번째 상추 심기는 실패했다. 일 년이 지난 씨앗은 싹을 틔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5월에 뿌린 봉선화도 자라지 않았다. 엄마는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를 도우며 자랐어도 그것을 몰랐다. 아마 엄마가 자발적으로 씨앗을 뿌리고 밭을 꾸민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노안이 온 후로 작은 글씨로 적힌 설명서는 절대 읽지 않았다. 노안이 오기 이전에도 설명서를 읽어보는 편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대충 예상해서, 또는 경험을 떠올리며 했다. 한 번은 언니의 제모크림을 헤어무스인 줄 알고 머리에 발랐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엄마의 설명서 읽지 않기는 계속됐다.
무엇이든 정석대로 하려는 나는 엄마의 그런 점을 답답해했지만, 엄마는 설명서를 읽는 것을 더 답답해했다. 엄마는 자신의 센스를 신뢰했다.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일까? 나와는 참 다른 사람. 엄마는 설명서를 읽었어도 융통성을 아주 크게 가지고 사용할 사람이다.
엄마는 상추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 하나로 마트에 가서 상추 씨앗을 사 왔다. 그리고 눈에 띈 시금치 씨앗도 데리고 왔다. 나는 찬바람 불 때 시금치가 맛있다고 알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딸, 그런 것도 알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심는 시금치도 있데”라며 마트 아저씨의 말을 전했다. 설명서는 읽지 않았지만 마트 아저씨의 설명은 들었으니 이번엔 성공확률이 높았다.
엄마는 상추를 1순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주고 싶었다. 엄마는 땅을 보다가 파가 심어져 있는 자리가 딱 마음에 들었다. 마침 파가 다 자라서 방 빼서 내보내고 그 자리에 시금치와 상추를 심었다. 뽑은 파는 총총 썰어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다. 다행히 며칠 후 엄마는 상추의 싹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