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

낙서장

by mixtape

이 이야기는 죽어야만 끝나는 줄 알았어요.


길을 걷다가 힘이 풀려 길가에 주저앉아 버린 것도,

하루 종일 잠만 자다 겨우 밥 한 끼를 먹고 다시 잠든 것도,

허벅지를 미친 듯이 때리다가 멍이 들어버린 것도,

일을 하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려버린 것도,

아무 잘못 없는 부모님께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끝나지 않는 지옥을 걷는 기분이랄까요. 그날 이후로 항상 어둡고 축축한 길이었어요. 제 일부분이 없어진 기분. 아니, 과하게 말하자면 저의 모든 걸 잃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대란, 저에게 그런 의미였던 거겠죠.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강 따윈 의미가 없어졌고, 몸이 너무 아플 땐 그대가 더 선명하게 떠올라 몹시 힘들었습니다. 괜찮은 척도 해보고, 마시고, 피우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슬픔과 후회,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한 고통 이외의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서 발버둥 쳤죠.‘나 같은 건 죽어야 돼’라며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떼쓰고, 그러다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여태 살아 있는 건 아마도 주변 가족들 덕분이겠죠. 너무나 힘들 때, 정말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그들은 제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혼자 버티는 것이 일상인 저에게, 혼자서 버틸 수 없는 일이란 건 너무 생소하고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혼자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는 생각보다 약한 존재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한 존재라 생각됩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고, 죽고 싶었는데도 여태 살아 있는 걸 보면요.

지금은 죽을 것 같을 정도는 아닙니다.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제가 사라지면 너무 힘들어할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무책임하게 도망치듯 죽을 순 없더라고요. 그럴 용기도 없고요.


너무 딥한 이야기로만 흘러갔네요.

요즘 길을 걷다 보면 꽃봉오리가 만개한 모습을 자주 보곤 해요. 예전엔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저는, 저 밝게 피어난 꽃들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힘들게 줄기를 뻗고, 꽃잎 한 장씩 예쁘게 빚어 세상 밖으로 나온 모습을 보면 ‘아, 쟤들은 이미 꽃을 피워 태어나서 해야 할 자기 일을 모두 완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물론 역경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에 대한 동경심과 부러움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사랑이란 감정엔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걸까요?

예전엔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이유를 갖다 붙이고 있는 걸 보면 제가 꽃을 바라보는 감정에 차이가 생긴 걸까요? 아니면 애당초 이유가 있었는데 예전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요. 두서없이 얘기하는 게 제 특기인가 봅니다.


사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남들에게 감정을 공유하는 편이 아니에요.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죠.

정말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좀처럼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적당한 감정 표현이 정서적 교감과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표현하기엔 때때론 저조차도 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어 혼자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항상 공유했다면 제 가족들은 이미 진저리가 났을 거예요.


그래도 그 하룻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을 때,

살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더라고요.

특히 새벽에 동생에게 찾아가 바보같이 울어댔던 기억이 있네요.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신음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의 먹먹함이 저를 덮쳐왔기에

아직 잠들지 않았던 동생에게 기댔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더욱 깊게 깨달았던 것 같네요.


가끔 누군가는 묻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냐고. 그러나 이 정도로 진심이었던 감정에는, 부끄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주 먼 훗날엔, 버티기 위해 썼던 제 글들이 부끄러워지려나요. 아마 그렇진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조금이나마 극복한 저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쁠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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