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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는 엄마숙제

by 북장

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아이는 방학 숙제 계획을 세운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방학의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가 실천한 흔적들은 분명 있지만, 그것을 '제출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초등교사 15년 경력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방학숙제는 아이 숙제가 아니라 엄마 숙제이다.


2학년 겨울방학 숙제로 공통과제 3개, 선택과제 2개를 틈틈이 지도해 달라는 알림이 왔다.


공통과제 3가지.

하루 30분 이상 독서하기, 하루 30분 운동하기, 일주일에 2번 이상 일기 쓰기.

이것들은 매일 하는 거니까 딱히 챙겨야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매일 독서를 하고 있고, 하루에 두세 개씩 운동을 다니고 있고, 주 5회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선택과제 2가지.

아이는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에야 방학 숙제를 떠올렸고, 선택과제 목록 중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이미 한 것들 중에 고르는 것이 아이의 선택 방향이었다.

아이는 악기 연주 동영상을 촬영해서 선생님께 카톡으로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가족과 여행 후 보고서 쓰기를 바꿔 계획서를 내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모두 아이의 힘으로 실천한 것들이니 말이다.


문제는 방학숙제를 제출하는 것이다.

매일 독서한 것을 증명하려면 독서록 같은 기록이 있어야 한다.

매일 운동한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글을 공책에 쓰지 않고 온라인 카페에 써놨는데 이건 어찌할지.


결국엔 엄마의 일이다.

방학숙제를 했다는 증빙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다행히도 읽은 책들은 모두 잠수네 시스템을 이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잠수네에 들어가 읽은 책 목록을 출력한다.

아이가 한 운동도 내 스케쥴러에 기록된 것들이 있어 이를 참고해 아이의 스케줄표를 만들고 출력한다.

글쓰기 카페에 들어가 아이가 쓴 글들을 출력한다.

전부 인쇄하여 타공기로 구멍을 뚫고 제본을 하여 한 권의 숙제 모음으로 만들어준다.


아이의 배움과 성장을 돕는 건 부모로서 기쁜 일이지만, 때때로 방학 숙제는 부모의 과제가 되어버린다.

아이가 주도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과 결국 부모가 마무리하는 것 사이에서 매번 고민하게 된다.

방학이 끝나갈수록 엄마의 손은 바빠지고, 숙제는 결국 아이와 엄마가 함께 만든 결과물이 되어 제출된다.


방학 숙제, 결국 엄마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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