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엄마야

명절을 맞이한 며느리의 시어머니 대변기

by 북장

"너네 엄마야. 엄마 고생하는 거 생각하면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않냐?"


명절에도 자기 엄마보다 축구가 먼저인 아들내미, 내 남의 편님아.

매번 명절이든 공휴일이든 가리지 않고 조기 축구를 나가는 바람에 꾸준히 구박을 듣는 내 남편아.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가 아닌데 나만 안타깝고 불쌍해서 발 동동인 거니?






이번 설날에도 어떻게 움직일지 얘기를 나누니 축구부터 일 순위로 나온다.


"축구 갔다가 고기 찾아서 가면 9시 반 정도 될 거 같아."

"너 그 말 지킬 수 있는 거니?"


믿지 않는다.

축구, 태권도와 관련된 그의 시간 약속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


"어머님이랑 얘기해 놨어? 작은댁 또 설날 아침에 늦게 오실 텐데. 또 혼자서 전 다 부치시라고?"

"아니, 말은 해놨는데 엄마가 맨날 먼저 다 부치잖아."

"네가 축구를 안 가면 해결이 돼. 축구 안 가고 일찍 가면 되잖아."

"아 또. 축구는 건들지 말자."

"너 이번에도 어머님이 전 부쳐놓으시면 명절에 축구 가는 거 이후로는 절대 안 돼. 어머님께 오후에 우리 가고 나서 부치자고 말 확실히 해놔."






감정이입이다, 우리 친정엄마랑 겹쳐 보여서.

그런데 너무 외로워 보여서.


평생 명절 때마다 손 하나 안 대는 작은댁 식구들 언제 오나 기다리며 혼자 음식 준비하시던 우리 엄마.

자식들이 커가면서 할머니 몰래 명절 음식 사다 나르고, 같이 준비하며 어떻게든 우리 엄마 명절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꼼수 쓰던 우리 남매들.

딸내미들 구박에 거실에서 밤 까는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손 움직이시던 우리 아빠.

친정은 그나마 명절을 대하는 자세가 한 팀처럼 움직인다.



시댁은 있으나마나 한 아들내미 하나 덕분에 어머님 혼자 앓으신다.

그놈의 장손, 몇십 년을 제사 지내셨으면 그만해도 괜찮지 않나?

아니, 어차피 작은댁 며늘아기 들이셨으니 따로 제사 지내도 괜찮지 않나?

왜 손 하나 까닥 안 하면서 자기 부모 제사를 며느리가 준비해야 하는 건지.


"우리 아빠 시골 늙은이야. 어쩔 수 없어."

"어머님, 아버님, 앞으로 50년 남았어. 꼬부랑 왕왕할머니 돼서도 너네 엄마 고생해야 되겠냐?"

"엄마 고생하는 건 싫긴 한데."

"나중에 아버님 혼자 제사 지내시라고 하고 어머님 모시고 명절에 날를까?"

"제발 그러지 마."


이 웬수떼기야, 너네 엄마 고생하는 거 싫으면 제발 혼자 준비하지 마시게 일찍 좀 가자.

축구를 포기 못 하겠으면 제사라도 좀 없애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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