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거지를 아시나요?
엄마의 방학 기간이 되면 아이가 항상 피력하는 의견이 있다.
"나도 유치원 쉬고 싶어! 다른 애들도 유치원 안 나오는데 나만 맨날 간단 말이야!"
아이의 말을 그냥 막연히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엄마가 쉬니까 자기도 쉬고 싶은가 보구나. 엄마랑 같이 있고 싶은가 보구나.
한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개근 거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성실함의 표상이었던 개근이 이제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가난의 표시가 됐다는 것이다. - 트렌드 코리아 2023, p.326 -
교직생활을 하면서 '개근 거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말이 나온 지가 벌써 4년 전 이란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아예 자동완성이 된다.
이 말에 받은 충격을 뒤로하고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가 땡땡이를 치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가 무언가 차이를 느꼈던 것일까?
친구들 중에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체험을 가고 집에서 쉬며 유치원이 아니더라도 자기와는 다른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시간을 다른 형태로 쓴다는 것에서 무의식적으로 차이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러고 보니 방학생활을 소개하는 숙제를 할 때 아이는 꽤나 여러 사진을 뽑아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의 다양한 활동을 뽐내고 싶어 했다.
시간의 쓰임이 결국엔 사회문화적 경험의 차이, 경제적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일 수 있겠구나 싶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마음과 연결시킬 고리를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선생님들의 대화에는 사회문화적 경험의 양극화가 주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튀어나온다.
교사로서는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이었으면서 내 아이가 느끼는 지점은 고려를 못 하다니.
성실함, 이것도 달리 생각이 된다.
성실은 분명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성실해야 하는 영역이 달라진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사회, 집단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성실하게 생활해야 했다면 지금은 일상, 개인이라는 작은 범주 안에서 성실한 것이 우선시되는 흐름이라 보인다.
예를 들면 나만의 루틴, 습관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독려하는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
즉,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나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다.
무섭게 말하자면 사회라는 기계의 부품에서 탈출하여 온전히 나라는 인격체로 존재하고자 한다.
'개근거지'라는 말 하나에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 있으니 '변화의 흐름'이다.
무거운 생각은 여기까지.
결론은 오늘 유치원 땡땡이다!
그런데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