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는 발걸음

by 북장
운동이 목적이라면 아이와 함께 걷지 말라.
아이와 함께하는 걸음에는 아이의 마음이 담긴다.
아이의 마음에는 목적지가 아니라 수많은 길과 풍경이 있다.



애데렐라에게 금요일은 이른 귀가시간을 요구한다.

1학년 딸아이의 스케줄상 금요일 마지막 일정은 2시 30분 종료.

아직 운동을 못했는데 벌써 애데렐라의 종이 울리다니.


"엄마 아직 만보를 못 걸었는데 엄마랑 같이 산책할래?"

아이를 데리러 가는 김에 함께 주변을 산책하지 않겠느냐 제안을 했다.

아이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선심 쓴다는 듯이 그러자고 말한다.


아이의 선심을 받지 말 걸.

이때 알았어야 했다, 끊임없이 끊어질 우리의 발걸음들을.

떠올렸어야 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우리를 붙잡을 것들이 제민천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어디로 갈지 묻는 말에 아이는 자신 있게 제민천이라고 외친다.

제민천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첫 번째 참새 방앗간을 만나고 말았다.


배스킨라빈스 31.

에라이, 당당하게 베라로 발걸음을 옮길 거면 당당하게 제민천이라고 외치지 말 것을.

입 주변을 초콜릿으로 만족스럽게 화장한 후에야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을 꺾어 이제 제대로 좀 가볼까 하는 순간 이번에는 내 취향의 방앗간을 만나고 말았다.

문 여는 시간과 마주치기 어렵던 작은 책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곳에서 눈길을 끄는 내 관심사들을 주워 담은 후에야 다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그 후로도 우리는 오리 가족을 만나 오리 궁둥이를 쫓아다니느라, 징검다리에서 가위바위보로 다리 건너기를 하느라, 시장 표지판을 발견하고 도넛 단골집으로 초코도넛을 찾으러 가느라, 시장 전망대에 올라 눕는 의자 조형물에서 허리 근육을 시험해 보느라, 편의점에 들러 큰 요구르트 하나로 목을 축이느라 걷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한 시간에 6,000보가 넘었을 텐데 그녀와 함께 한 한 시간은 반토막 나 3000보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산책 시간은 감사한 일 투성이다.

혼자 걸었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에 한 번이라도 시선을 둘 수 있었음에.

혼자 걸었다면 가지 않았을 길에 한 번이라도 발을 디딜 수 있었음에.

혼자 걸었다면 웃지 않았을 때에 함께 웃을 수 있었음에.


오늘 함께해 줘서 고마워,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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